나는 갑질 피해자입니다.

바보처럼 살아야 해요. 그래야 그 사람이 나한테 일을 안 시켜.

by 케빈

아들에게 '요즘 회사에서 어떻게 지내니? 적응은 잘되니?'라고 물었을 때 아들은 뜻밖의 대답을 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취직의 기쁨에 들떠 무엇이든 열심히 하겠노라 다짐하던 아이의 입에서는 이상한 말이 내뱉어졌다.


"엄마, 그냥 바보처럼 살고 있어요."


엄마는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일이 안 맞아?"


"아니요 괜찮아요. 바보처럼 살아야 그 사람이 일을 안 시켜요. 전 괜찮아요."


아들의 '괜찮다.'는 말을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어린 나이에 첫 취직이고 군생활 2년도 아무 문제 없이 잘 보냈던 아이였다. 그래, 곧 적응하겠지 하며 엄마는 아들을 위로했고 스스로도 달랬다.


그리고 며칠 후 아들의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이른 아침이었고 남편이 출근한 후였으며, 엄마는 아침이 남기고 간 분주한 어지러움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벨은 평소와 다르게 매우 다급했으며 아침의 적막을 찢어놓으며 시끄럽게 울어댔다.


"어머님 ㅇㅇㅇ가 출근을 안 했는데 무슨 일 있는 건가요?"


엄마는 아무 일 없는데요라고 말하며 아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가보겠다는 말을 했다.


아들이 살고 있는 원룸에 도착해서도 엄마는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다. 아들의 집은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고 냉장고의 반찬들도 엄마가 보내준 처음 양 보다 적당히 잘 줄어있어다.


그리고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아침의 그 회사 직원이었으며 회사로 잠깐 와달라는 부탁을 했다.


엄마는 '무슨 일 있냐?'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그 사람의 말 언저리에 불길함이 묻어나서 엄마는 말을 아꼈다.


회사에 도착한 엄마는 직원보다 먼저 경찰을 만나야 했다.


'ㅇㅇ이가 회사 지하창고에서 발견되었고 유서가 있으니 지금은 ㅇㅇ이를 보지 못한다.'는 말이 경찰의 입에서 무미건조한 가시처럼 쏟아졌다.


엄마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


ㅇㅇ씨는 입사 후 사수로부터 모진 질책에 시달렸다.


ㅇㅇ씨에게 맡겨진 팀 막내의 업무에 사수의 업무까지 처리해야 했다.


팀장은 사수의 그런 행동에 눈감았다.


저 사람이 교육하는 방식인가 보다 해서 내버려 두었다.


ㅇㅇ씨는 팀으로 걸려오는 70통이 넘는 전화통화에 대응해야 했고 사이사이 사수가 던진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ㅇㅇ씨는 지옥불을 걷고 있었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며 일을 잘 처리했을 때에도 '그 사람'은 ㅇㅇ씨를 칭찬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잘해야 한다.', '이 정도는 기본이다.', '군대에서 뭐 배웠냐.'등의 말만 돌아왔다.


ㅇㅇ씨는 끝없이 무너지고 있었고 그날 새벽에도 사수로부터 출근하자마자 혼이 났던 것이다.


10여 분간 사수의 고성과 악담에 시달리던 ㅇㅇ씨는 조용히 자리로 돌아와 고개를 푹 숙였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ㅇㅇ씨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는 갑질 피해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