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과 똑같았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고 아이들은 집 가까운 학교에 다녔으면 좋겠다. 걱정 없이 출근하고 회사 일을 집에 가지고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쉬는 날에는 가족과 함께 가까운 곳으로 떠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캠핑도 가고 했으면 좋겠다. 아내는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하고 나도 지금과 같이 교대 근무를 했으면 좋겠다. 다만 아내와 나 모두 승진을 해서 조금은 더 많은 돈을 벌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리고 나는 10년 후에도 살아 있고 싶다.
2005년. 바다에 나타난 가상 적 함정을 타격하기 위해 팬텀 4대는 야간에 이륙했다. 청주에서 뜬 전투기가 남해바다에 도착하기까지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조종사 모두는 야간투시경이라 불리는 NVG를 쓰고 있었고 각 편대는 맡은 임무를 수행하고 원래 고도인 10,000피트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칠흑 같은 바다에 반짝이는 점하나를 조준하며 전투기는 바다로 내리꽂았다. 가상 미사일을 투하하고 조종간을 잡아당겨 고도를 회복해야 했다. 하지만 내 교관이 탄 전투기 한 대가 고도를 회복하지 못하고 바다로 들어가고 말았다. 나머지 3대의 전투기는 교관을 삼킨 바다 위에서 한참을 체공하고 기지로 돌아왔다.
교관의 죽음을 알리러 기지 안에 있는 관사로 갔다. 형수님은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은 채 무슨 이유에서인지 집 안에서는 청소기 돌리는 소리만 들렸다. 문은 새벽에서야 열렸고 형수님은 검은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채였다. 뒤에는 일곱 살, 다섯 살 난 두 아이가 엄마의 치마 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2019년. 독도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에서 환자가 발생했다. 환자는 어구에 손이 끼여 손가락 하나가 절단되었다. 절단된 손가락은 찾은 상태였고 신속히 봉합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 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대구 중앙 119 소속 소방헬기가 이륙했다. 환자와 보호자는 배에서 독도로 옮겨졌고 소방헬기는 울릉도에서 급유 후 독도로 향했다.
헬기가 독도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 23분. 환자와 보호자, 소방공무원 5명을 태운 헬기는 독도를 이륙했다. 그리고 2 분 만에 바다로 추락했다. 또 칠흑 같은 바다는 7명의 목숨을 삼켰다. 소방공무원 중 한 명은 동기생이었다.
사고 소식을 들은 나는 소방본부에 전화를 걸었다. ‘지금 추락한 그 헬기의 부기장이 ㅇㅇㅇ가 맞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확인해 줄 수 없다.’였다. 나는 그 대답에서 부기장이 내 친구가 맞다는 것을 확인했다.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휴대전화를 열어 친구의 프로필을 찾았다. 프로필에는 내년이면 학교에 갈 그 친구의 아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10년 후에도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