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발자국

by 케빈

22년 5월 전투기를 소재로 한 영화 탑건2가 개봉한다. 탑건1이 개봉한 지 꼭 36년 만이다.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였던 시절 학교를 다니던 작은 아이였던 나는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에 반해 꿈을 정해버리고 말았다. 조물주가 신들의 회식에서 잠깐 정신을 놓고 시간을 36년 전으로 되돌려 준다면 나는 조종사가 아닌 도서관 사서나 학교의 선생님을 목표로 공부했을 것이다.

과외 한 과목을 손자에게 시켜줄 수 없을 만큼 우리 집은 변변치 못했다. 지금은 조손가정이라는 명목으로 정부의 지원이 나오지만 그 당시 조손가정은 무척이나 흔했고 지원대상도 아니었다. 그저 할머니가 하는 작은 가게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네 식구 연명하기에 바쁜 나날이었고 하루하루가 전쟁인 날들이었다.

많은 돈을 받지는 못했지만 좋은 머리를 물려받아 학교에서는 공부를 곧잘 했다. 중, 고등학교 시절 항상 상위권을 유지했고 수능도 제법 잘 봐 공군사관학교 입학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고3 담임선생님마저 서연고 입학 플래카드 옆에 사관학교 입학 명단에 내 이름을 준비하고 있었을 만큼 학교의 예측은 확고했다.

하지만 IMF 사태가 터지며 전국의 사관학교, 경찰대학교 합격 커트라인이 너무 높아지고 말았다. 수능 상위 10% 정도면 합격 안정권이었지만 그 수치는 상위 5%로 올라갔고 나는 보기 좋게 낙방했다. 공군사관학교는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의 마력에 빠진 내 꿈이기도 했지만 학비가 들지 않아 좋다던 할머니의 꿈이기도 했다.

ㅇㅇ대학교 문헌정보학과와 ㅁㅁ대학교 의용공학과에 모두 합격했지만 할머니는 단지 학비가 싸다는 이유로 나를 XX대학교에 보냈다. 인생을 살면서 천 번도 넘는 후회를 했지만 그 당시 할머니의 결정에 아무런 말도 못 한 내가 지금은 너무나도 후회된다.

그렇게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수많은 선택과 여러 시간들의 조각이 합쳐졌겠지만 나는 그 선택을 되돌리고 싶고 시간의 조각을 다시 짜 맞추고 싶다. 그 조각들은 내가 원해서 넣은 것도 있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희망대로 던져진 조각도 있다. 어떻게 해서든 그 모양들을 다시 내가 원하는 대로 이리저리 돌려놓고 싶어 다른 무언가를 찾아 나서곤 한다. 하지만 같은 제목의 영화가 “2”라는 이름을 달고 다시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만큼 나는 너무 멀리 걸어와 버렸다. 그리고 그 걸음 중간에 아내와 두 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분명 삐뚤빼뚤 어지러운 발자국이었는데 아내와 두 아이부터 예쁘고 곧은 발자국으로 바뀌어 있다. 심지어 발자국 하나하나에서 은은한 광채가 나기도 하고 향긋한 꽃냄새가 나기도 한다. 그렇게 밉던 내 발자국과 내 선택의 조각들이 내가 애써 돌려놓지 않아도 아이들과 아내로 인해 조금은 봐줄 만한 그림이 되었다. 의아해하며 봤더니 내 발자국 옆으로 두 개의 작은 발자국과 하나의 어른 발자국이 내가 걷는 속도와 똑같이 나란히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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