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배우자

by 케빈

다름을 알았을 때는 나이 불혹이 넘어서였다. 마흔 전에는 왜 그렇게나 타인에게는 엄격하고 스스로에게는 관대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기억이다. 삶에 여유가 조금 생겨서 일까? 슬하에 아들 둘을 두어서 일까?

때때로 두 녀석이 아빠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지곤 한다. 아빠 도마뱀은 왜 알을 낳아? 아빠 태양은 왜 동그래? 그럴 때마다 모범답안을 내놓으려고 주위에 핸드폰을 주워 들곤 했다. 요즘은 다행히 유튜브를 통해서 아이들이 원하는 답을 바로바로 내놓을 수 있지만 나도 한참을 생각하곤 한다. 왜 도마뱀이 알을 낳지? 새끼를 낳을 수도 있는데, 왜 태양은 네모나지 않고 둥글까? 그럴 때마다 동물학자가 되었다, 지구과학자가 되었다가 하곤 한다. 아니지 학자라고 한들 그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아이들은 같은 피사체이지만 아빠와는 다른 걸 보는 듯하다. 그렇다고 어른들이 보는 답을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느 날은 일하다 말고 두 녀석의 질문이 문득 떠올라 손 모자를 만들어 하늘을 뚫어져라 본 기억이 있다. 내가 보는 하늘과 아이들이 보는 하늘은 같을지언정 분명히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어른들이 보는 답이 정답일 때가 많지만 그 답을 아이들에게 곧이곧대로 설명하기는 많이 어렵다.

온라인 수업을 통해 글쓰기 수업을 시작했다. 고양이와 커피, 그리고 이사 온 지역의 지명들이 자주 거론되는데 이것들 또한 같은 피사체이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대상이 달라졌다. 착한 고양이가 되었다가, 털 뭉치가 되었다가, 캣맘이 따듯한 마음이 되었다가 문득 또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시오라는 냉정한 플래카드가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나는 따듯한 마음이 가득 담긴 고양이 아빠가 되고 싶지만 반대하는 입장에서 그들의 이유를 들어보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매일 마시는 커피도 그렇다. 나는 한 잔의 커피를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다른 사람이 권하는 대로 함께 앉아 마실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하나의 의식처럼 카페인에 한없이 약한 분들은 그 한잔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아주 신중히 선택한다.

내가 아는 세상이 곧 둥글지는 않다. 어쩌면 평평할 수도 있고, 어쩌면 각진 모서리일 수도 있다. 지구과학이라는 시간을 통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둥근 지구 속에 내가 우뚝 서 있는 게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아이들은 아마도 알지 모르겠다.

좀 더 겸손해야 하고 좀 더 많이 만나야 하고 좀 더 많이 배워야겠다. 내가 아는 세상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더 많이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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