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들

by 케빈

저녁으로 사 온 회를 먹으며 오랜만에 한국에 방문한 이모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내는 바닷가가 보이는 창가 쪽에 앉았고, 양 옆으로 장모님과 이모할머니가 앉았다. 경주와 부산을 오간 긴 여행으로 그들은 다소 지친 듯 보였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그들의 얼굴에서 생기를 돌게 했다.

포장해온 음식이 반쯤 없어졌을 때 찬이 녀석이 갑자기 아빠의 옷 옆 자락을 잡아당겼다.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것이 몸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찬아, 응? 왜 그래?"

이때는 아직 찬이가 옹알이만 할 때였는데 "우, 우"하며 옷을 잡아끌더니 계속 화장실을 가리키며 아빠를 졸랐다. 응가가 마려운 건가 해서 아이를 덥석 안아 들고 화장실로 갔다.

아이를 화장실에 내려놓으니 찬이가 스스로 바지를 내리고 아빠 목을 꼭 껴안았다. 이따금씩 힘을 주는 게 분명 응가를 하는 시늉이다. 찬이를 뒤로 안고 오금 쪽을 잡은 채 아이의 변이 쉽게 나오도록 안아주었다. 분명 힘은 주고 있는데 쉽게 나오지 않는다. 변비구나 싶었다. 아이는 얼굴이 빨개져서 콧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아직 약국 문 닫을 시간은 아니었다. 얼른 찬이를 엄마에게 넘기고 옷을 챙겨 입고는 약국으로 냅다 뛰었다. 술을 좀 마셨지만 속이 울렁거리거나 머리가 어지럽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약국에 도착해선 관장약 두 통을 샀다. 그리고 또다시 숙소로 뛰었다. 숨이 차오르지 않음에 신기해하며 아들에게 도착했다.

찬이는 엄마의 힘을 빌려 어느 정도 변을 해결했다. 엄마가 아이의 그곳을 살살 마사지하며 거의 끄집어내다시피 해서 변이 나왔고 아이는 관장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안정적이었다. 그리곤 언제 그랬냐는 듯 숙소의 구석구석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숨이 몰아 쉬어졌다.

말도 하지 못하는 놈이 그래도 자기 의사를 표현해보겠다고 아빠의 옆구리를 잡아당기는 게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머리가 아닌 가슴에 남은 이유는 그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해서이다. 이놈은 아빠가 자기의 불편함을 해소해줄 줄로 굳게 믿었고,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두 아들 녀석을 키우면서 보고 있으면 두 놈이 한 배에서 나온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르다. 큰 놈은 본인이 불편함을 느끼면 아빠를 찾고 작은놈은 아직 엄마를 찾는다. 큰 놈은 자다가도 잠깐 눈을 떠 실눈으로 아빠에게 다가온다.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냐마는 큰 놈은 아련하고 애달프다. 컴퓨터 게임에 취해 아빠랑 어디 나가지도 않으려고 할 만큼 커버렸지만 아빠는 가끔 아무것도 없는 옷 옆 자락에 손을 가만히 대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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