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로 돌아가기도 싫고요.
8살 때 엄마가 집을 나갔어요. 아빠라는 사람이 일은 안 하고 술만 먹어대니 질리셨나 봐요. 동생이 6살이었는데 눈에 많이 밟히셨을 거 같아요. 대구에 살다가 당장 생계가 불안정해졌으니 어디론가 가야 하는데 다행히 고아원은 아니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셔서 부산으로 이사를 왔네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빠라는 사람은 함께 오지 않은 거 같아요.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선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어요. 할머니의 삯바느질이 유일한 수입이었으니 그리 풍족했던 건 아닌 거 같아요. 가난했죠. 자연스럽게 철이 빨리 들 수밖에 없었어요. 8살 초등1학년은 그렇게 빨리 어른이 되어 갔어요.
학원 하나 다닌 적 없는데 공부는 꽤 했던 건지 수능이 전국 상위 9프로가 나왔어요. 할머니는 학비가 전혀 들지 않는 사관학교 입학을 희망했지만 IMF가 터지면서 너도나도 가계가 어려워졌는지 경찰대학교와 육해공사관학교의 수능 커트라인이 많이 올라가 버렸네요. 어쩔 수 없이 가장 학비가 싼 국립대를 찾아야 했고 지방에 이름난 ㅇㅇ대학교를 버리고 ㅇㅇ대학교를 선택했네요.
특별한 멘토도 없었고 딱히 꿈이 없던 제게 영화 탑건과 드라마 파일럿은 제 인생을 바꾼 콘텐츠였어요. 해양대 입학 후 공군조종장학생제도를 알게 되었고 지원을 했어요. 다행히 수능을 잘 본 터라 합격은 쉬웠네요.
국민학교 세대고 어린이집이나 학원 같은 곳은 다닌 적이 없어요. 다닐 수도 없었고요. 또래 친구들 중에 잘 사는 친구는 저보다 공부는 못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다들 저보다 큰 평수의 아파트에 사는 거 같아요. 자가로요. 물론 부모한테 증여받은 거네요.
9년의 직업군인 생활을 끝내고 현재는 공무원으로 지내고 있어요. 흙수저보다 못한 똥수저로 시작했고 아내는 그런 저를 잘 받아주었지요. 지금은 저도 은행빚이 가득한 자가에 살지만 옛날을 생각하면 얻은 게 아주아주 많은 거죠. 아내에게 이 글을 빌어서 다시 한번 더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네요.
요즘 젊은 세대들이 영포티라는 단어를 쓰며 '젋어보이려 노력하는 40대를 비하'한다는 기사를 봤어요. 글쎄요 저는 젊어 보이기 싫고 그 끔찍했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기는 싫네요.
아. 물론 저도 20대 시절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이 쿨한 걸로 착각한 적이 있었어요. 일부러 투표를 안 하고 그랬으니. 하지만 지금은 아니랍니다. 지금은 내 생활의 모든 분야에 정치가 관련이 있다는 걸 알고 투표 하나하나를 아주 신중하게 하고 있답니다.
부디 젊은 여러분들도 그러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