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침묵보다 나은 갈등 (이은미)
코로나로 남편과 24시간 있는 시간이 계속되면서, 다시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결혼 후 남편과 이렇게 붙어있던 적이 없었습니다. 새벽기도 다녀와서 힘들어 뻗어있는 남편을 뒤로하고 어린아이들과 오전에 등원 전쟁을 치르는 동안, 제 온 신경은 누워있는 남편을 향해있었습니다. 신경이라기보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과 원망이 들었습니다.
사역자의 아내로 살면서, 사역에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남편과의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들을 꾹꾹 마음에 담아 놓고 사는 게 편했습니다.
하지만 말만 삼키면 뭐할까요. 이미 저는 얼굴과 행동으로 불편한 감정을 팍팍 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영문도 모른 채 제 눈치를 보고 답답해했습니다.
저는 이 복잡한 마음을 남편에게 표현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같이 있고 싶지 않았고, 갈 곳도 없지만,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아이들이 등원하고 나면 동네를 이리저리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원수가 될 수 있구나’하고 제 마음을 돌아봤을 때는 큰 죄책감이 저를 눌렀습니다. ‘어떻게 내 남편을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가? 주님 앞에 과연 올바른 마음인가? 이게 정상인가? 난 너무 악하다. 죄인이다.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괴로웠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얘기를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시시콜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친정엄마에게 말하면 남편 보필 잘하라고, 사역자 편에 서실 어머니가 예상이 되어 말을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제 속상한 마음을 처음으로 토로했습니다.
‘남편이 미워...’
이 말을 꺼내면서 저는 오열했습니다. 꾹꾹 담아놨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친구는 "다 그래, 정상이야. 나도 그래."라는 말을 했을 뿐인데, 저는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한 번 흘러넘친 눈물은 쉬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친구와의 대화로 제 감정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지만, 남편과의 관계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였습니다. 그냥 그대로 있을 순 없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과 차를 타고 30분 정도 이동할 시간이 생겼을 때였습니다. ‘이번 주 동안 당신의 이런 행동 때문에 내가 서운한 감정이 들었어요.’ 라고 평소 같으면 담아놨을 법한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사실 서운한 이야기를 꺼내면 그 순간 남편의 힘든 표정이 싫어 얘기하지 않았었습니다. 웬만하면 갈등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편은 힘들더라도 함께 얘기하면서 풀 수 있으니 쌓아두지 말고 얘기해달라고 제게 부탁했습니다. 남편은 제가 침묵하는 것보다 서운함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 훨씬 좋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남편을 배려한다고 입을 꾹 닫고 있었던 것이 더 큰 오해와 상처를 불러왔다는 것을 말입니다.
부부는 서로의 다름을 깊이 이해하고 맞춰가는 과정을 꼭 거쳐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대화를 지속하려는 의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각자의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고민을 하며 대화하는 것이 정말 꼭 필요합니다.
부부가 서로 화가 난 채로 잠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남편을 향해 뾰족한 마음이 들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같이 걷고 있는데도, 남편에게는 한 마디도 건네지 않고, 서로 대화 없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던 차에, 조카 로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풀어져 한없이 다정한 이모 모드로 통화를 마쳤고,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에게만 뾰족한 마음이었구나. 이 마음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정말 남편에게만 향해 있었구나. 아, 남편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이런 일을 겪고 있을 때 남편은 제 뾰족한 마음이 풀어지기를 주님께 기도하고 있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저희 부부가 화가 난 채로 잠들었다면 다음 날은 대화하기가 더욱 어려웠을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 화난 채로 잠들지 않고 서로 뾰족한 마음을 풀기에 힘쓰면 좋겠습니다.
서로를 향한 뾰족한 마음을 품고 잠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마음이 풀어졌을 때 다시 배우자와 행복하고 기쁜 사랑의 관계로 잠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