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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숲에서 행복의 꽃 피우다』

크리스천은 우울증에 걸리면 안 되나요?

by 장산하

제가 살던 아파트는 16층이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창밖을 보며 나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 읊조렸습니다.


“아, 뛰어내리고 싶다...”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목사인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성경을 묵상하면서도 천국에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몇 차례 들기 시작할 때 아내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나 사실 요즈음에 죽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기 시작했어. 행복하지 않고 많이 힘든 것 같아.” 아내는 잠잠히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저를 격려해 줬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내는 제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여보, 우울증인 것 같아.” 저는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충격적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데, 예수를 믿는 사람이 그것도 목사가 우울증에 걸린다는 것은 쉽게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이 지금 우울증에 빠졌다는 것을 바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먼저는 제가 받은 스트레스와 고민을 하나씩 적어보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에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열심히 달려왔지만, 어느 날 장모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장 서방, 다시 큰 교회에 들어가서 부교역자로 다시 준비해 보는 건 어때?” 자녀를 생각하시는 마음을 알기에 잘 들어 드리면서도 이 길을 꿋꿋이 가겠노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몇 주 뒤에 부모님께도 전화가 왔습니다. “아들, 다시 큰 교회 부교역자로 들어가서 준비해 보는 건 어때?” 똑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부모님께 버럭 화를 냈습니다. 그리고 많이 속상했습니다. 맨땅의 개척을 해서 가는 길이 외롭고 쉽지 않은데, 더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며 기도해 주면 좋겠지만, 부모님은 제 좁은 길을 지지해주지 않는 것만 같았습니다.


찬 바람이 불던 가을 아내는 제게 “여보는 언제가 행복해?”라고 물었을 때 3개월 정도 행복한 기억이 없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생각했을 때, 뜨거운 태양이 타오르는 저희 교회 여름 수련회가 생각났습니다. 그것이 벌써 반년 전 일이었으니 그 후로는 행복하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또 가장이 되고 개척교회를 시작하면서 재정에 대한 책임과 스트레스는 제게 큰 고통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제가 인터넷에서 생체실험을 찾아보고 아내에게 2박 3일 동안 다녀오면 안 되겠냐고 이야기했습니다. 아내는 울면서 그렇게까지 하지 말자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돌보는 것부터 함께 집안일을 돕는 것까지 제게는 한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혼자 눈물 흘리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개척교회를 잘 이끌 수 있을까? 혹 실패하지는 않을까?’라는 염려와 걱정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내가 제게 들어보라고 SNS로 두 가지를 보내주었습니다. 하나는 ‘WELOVE – 나를 부르신 주’라는 찬양입니다. 가사가 이렇습니다.


“나를 부르신 주가 이루어 주시네

잠시 넘어지더라도 붙잡아 주시네

나의 걸어가는 길 늘 동행하시네

혼자라 생각했던 삶 늘 함께 하셨네.”


운전하면서 듣는 찬양 가사에 갓길에 대고 한참 동안 울었습니다.

찬양의 가사가 마치 제 삶인 것 같았습니다. 제 자신이 잠시 넘어져 있는 거라고, 하나님이 반드시 나를 붙잡아주실 거라고, 나의 걸어가는 길이 혼자 같지만, 보이지 않는 주님이 반드시 나와 함께하시고 동행하신다고 주님이 제게 속삭여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차에서 주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그리고 아내가 제게 보내준 또 한 가지는 ‘새롭게 하소서 – 유은정’입니다. 정신건강 전문의 원장님이십니다. 그 간증을 들으면서 원장님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에서 바로 병원을 예약하고 상담받게 됐습니다. 원장님을 만나러 터벅터벅 병원 안으로 걸어가는 제 심정은 간절했습니다. 원장님의 얼굴을 만나 뵈니 온화하고 평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상담을 받으면서 원장님께서는 제게 오히려 목회자나 선교사들 그리고 크리스천이 우울증에 많이 걸리는데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쉽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정신적 고통이 많은 경우들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원장님께 솔직하게 어려웠던 감정들과 사건들 그리고 스트레스들을 차근차근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것들에 대해 나누면서 제 낮은 자존감을 하나님께 다룸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히려 원장님은 제게 “목사님은 자존감이 높은 편이세요. 자존감이 낮았다면 교회를 개척할 수도 없고, 책을 쓰실 수도 없었을 거예요.”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원장님은 많은 크리스천이 우울증을 무조건 영적으로만 해석하는데, 물론 영적인 것들도 있을 수 있지만, 신체적인 것과 정서적인 것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제 신체검사를 했는데, 심박수가 높게 나왔고, 그것은 마치 유리잔에 물이 넘쳐흐르는 것처럼 지금 몸이 많은 스트레스를 다 못 버티고 힘들어하는 상태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큰 유리컵이 스트레스를 받아낼 수 있는 정도의 크기라면, 저는 심박수가 높게 나오면서 잔이 작아져서 조금만 스트레스가 차도 쉽게 차고 넘치는 상태라는 겁니다. 제 상태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건강을 위한 약도 권면해 주셨습니다. 순간 ‘크리스천이 과연 약을 먹어도 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처음에는 약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고 설명해 드렸고, 원장님은 학생들에게도 처방하는 약이어서 괜찮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창구들을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사소한 것부터, 바닐라 라떼 마시기, 땀 흘리며 운동하기, 아내와 산책하며 데이트하기, 농구하기, 그리고 대천덕 신부님이 세우신 ‘예수원’ 가서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쉼을 갖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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