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의 황태자, 찰스 스펄전의 우울증
제가 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할 때 일입니다. 12월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에 부임하자마자 외부에서 진행하는 겨울 수련회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아직 아이들과 친해지지 않았기에 학생들이 수련회 첫날부터 말썽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학생은 무단으로 외부에 나가서 모텔에서 자겠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둘 째날 저희가 있는 숙소가 고층 높은 건물로 되어있고, 방마다 5명씩 잘 수 있고, 학생들은 10개가 넘는 방에 배치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있던 방에 대낮에 불길이 창문 너머로 치솟는 겁니다. 아이들이 방에 다 들어가 있었는데, 밑에서 불이 나는 상황이라면 정말 위험하다고 판단됐습니다. 저는 정말 미친 사람처럼 각 방들을 다 두들기면서 소리쳤습니다.
“불이야!!! 나와!!!”
만약 사고로 아이들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습니다. 그렇게 소리 지르고 아이들을 인도하면서 1층 밖으로 대피시켰습니다. 밖으로 나왔을 때는 제가 완전히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습니다. 큰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바로 옆에 붙어있는 작은 상가에서 불이 심하게 붙어서 그 불과 연기가 하늘까지 치솟았던 겁니다.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제가 바닥에 완전히 주저앉아 엎드려있었을 때 제가 정말 짠했는지 “전도사님 괜찮으세요?”라고 물어보면서 그때부터 아이들이 제 말을 잘 듣기 시작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와 비슷한 사건이지만 정말 비극적인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1856년 10월 19일 새로 건축된 서레이가든 음악당을 빌려서 약 1만 2천여 명의 사람들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집회를 인도하고 설교한 목사님이 바로 설교의 황태자라고 불리는 찰스 스펄전 목사님입니다. 예배 중에서 “불이야!”라고 외치는 함성이 들려왔습니다. 그 순간 1만 2천여 명이 한순간에 우르르 나가기 시작하면서 예배는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려 7명의 사망자가 나옵니다. 그러나 예배 중에 불이 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사역과 집회를 방해하려는 방해꾼들의 계획으로 밝혀집니다.
그 후로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밤낮으로 깊은 슬픔에 빠집니다. 악몽을 꾸기도 합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어느 날 주일 설교 중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저는 아주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중에는 한 분도 이런 우울증에 걸리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렇게 위대한 설교자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짧은 인생으로 57세까지 살다가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의 22년 사역 중에 1/3은 우울증으로 인해서 주일 설교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고 숨기도 하고 쉬기도 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통풍을 앓기도 했습니다. 해산하는 고통을 경험하듯이 고통스러워했고, 너무 극심한 고통이 있는 나머지 그는 “나는 구원받지 못한 것 같다. 구원받았다면 어떻게 이렇게 오래 우울증을 앓고, 심지어 통풍까지 있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어느 주일에 설교를 도저히 할 수 없어서 고향으로 가서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어느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기차를 타고 자기 고향으로 가서 주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의 설교가 찰스 스펄전의 설교 표절해서 주일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설교의 내용은 ‘칭의’였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찰스 스펄전의 자신이 작성한 설교 내용을 듣고 그 자리에서 다시 힘과 은혜를 얻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주일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을 때 담임 목사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찰스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를 표절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찰스 스펄전은 목사님의 손을 잡고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칭의에 대한 설교로 제가 다시 우울증에서 일어날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찰스 스펄전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우울증에 빠진 사람을 조롱하거나 정죄해서는 안된다. 우울증이란 신앙의 부족함으로 비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따뜻한 위로와 관심이 필요한 고통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