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성
동토가 점차 녹아내리는 계절이 오고 있었지만, 세상은 어지러웠다.
태후가 밤낮으로 젊은 남자들을 취한다는 소문이 북경에 돌았고 의화단에 소속된 자들이 서양의 모든 것을 불태워야 하며 그들이 우리의 모든 것을 짓밟는다는 말을 곳곳에서 하고 다녔다. 피 끓는 청춘들이 거기에 동조했고 길거리에는 서구의 모든 것을 불태우자는 붉은 글자들이 나뒹굴었다.
성당은 문을 닫았다. 신부는 거절했지만, 최근에 영국인 한 명이 밤에 길을 가다 참수를 당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 난 후, 대영제국군들과 불란서 군인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거리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말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레오와 자끌린 부인은 별 움직임이 없었다. 그들은 신부에게 방 하나를 내어주며 그곳을 임시거처 및 미사 장소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생각보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문을 닫은 성당에서 마음도 함께 떠날 거라 예상했지만, 신실한 자들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스무 명 정도 되는 인파들이 주말마다, 아니, 평일에도 레오의 집 앞에서 미사를 준비하며 신부를 기다렸다.
슌은 그에 감동받았는지, 미사 준비를 열심히 한답시고, 미사 이외에는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부인이 자네를 찾는구만.”
점심시간에 길을 가다 마주친 레오가 먼 곳을 응시하며 흘리듯이 말했다.
“아... 네. 부인을 언제 뵈면 될까요?”
“공장장실로 가보게. 지금.”
공장장실 입구에 다다랐을 땐 이미 그 안이 너구리 굴인 것을 알게 되었다. 문을 열자, 처음엔 뿌연 연기로 가득 차 앞을 볼 수조차 없었다.
“차 한잔해야지~.”
부인은 여느 때와 같이 밝고 청초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넸다.
그녀를 따라 나와 마차를 올랐을 때 왠지 모르게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녀는 마차의 창밖을 보며 턱을 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택에 도착할 때까지.
집에 도착하고서도 그녀는 아무 말 없었다. 작은 숟가락으로 차를 휘휘 젓고서야 입을 뗐다.
“뭔가 느껴지지?”
“무엇을 말인가요?”
“우리 사이가 좀 멀어진 거 같지 않아?”
“....”
“내가 여기서 첫 실패를 맛본 거 같아.”
“네?”
“우린 이제 떠날 거야.”
“?!”
“그렇게 깜짝 놀랄 일인가...”
부인은 차를 휘휘 저으며 말을 이었다.
“떠나기 전에 내가 자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네... 말씀하세요.”
“행복해야 해.”
“네? 아... 네!”
쓴웃음을 지은 부인은 대답이 시원치 않은지, 끝내 웃지 않았다.
“자기, 술은 좀 마셔?”
“아뇨... 전혀요...”
“그렇구나.”
부인이 갑자기 일어나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웬 병을 하나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 병의 뚜껑을 따고는 입을 데고 들이붓기 시작했다.
부인이 순식간에 혀가 꼬여 비틀거리며 말했다.
“너. 창녀와 정부의 차이가 뭔지 알아?”
“창녀와 정부요...?”
“그래. 창녀. 세상 어딜 가나 있지. 너도 알잖아? 창녀가 무엇인지.”
“....”
“차이가 뭘까?”
부인이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그녀가 숨을 내쉴 때, 숨 막힐 듯 술 냄새가 진동했다.
“자, 어서 말해봐. 내게.”
“몸을 판다... 안 판다...?”
“틀린 건 아니지만, 정답은 아니야.”
“그럼....?”
자끌린은 나의 눈을 지그시 보다 크게 웃어버렸다.
“하하하하하! 재밌는 거 알려줄까? 너는 창녀는 돈을 받고, 정부는 돈을 안 받는다고 했지?”
“네.”
“근데 생각해 봐. 정부도 돈을 받아~ 자기 서방한테! 맞지?”
“아... 네.”
“근데 뭐가 다를까?”
“.....”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네...”
“창녀는 자유롭지.... 정부는 그렇지 못해.”
“....?”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한 표정이구나. 괜찮아. 자기 나 하나만 부탁하자.”
“네! 무엇이든 말씀하셔요!”
“여자란 존재는 살아 있는 동안 언제나 두 번째야.”
“왜 그렇죠?”
“그거 아니? 이 세상 긍정의 단어들은 모두 남성형이 붙어. 부정적인 것은 여성형이 붙지. 이 나라도 그렇더만, 질투하고 시기하고... 그런 건 모두 여자 탓이야.”
“....”
“참 웃기지 않니? 남자란 놈들.... 여자 몸에서 나와 처음으로 본 존재가 엄마라는 여잔데, 어떻게 털이 나면, 그 낳아준 여자를 짓밟으려 안달이 났는지....”
“....”
“우린 항상 타자야. 알겠지?”
“네. 오늘 하신 말씀 제가 계속 마음에 두고 있을게요.”
자끌린은 웃고 있었지만, 울고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