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女 5화

동정과 연민의 가면으로 나를 소유하려 했던

by diletantism

5화 - 낯선 이를 위한 나라


황룡기가 바람에 날려 바닥에 떨어졌다.

모두 어쩔 줄 몰라 하여 빨리 주우려 할수록 황룡기는 진흙에 더 빠져드는 듯했다.


“아이고, 이걸 우째...”


“허..... 나라님과 같거늘....”


“에잇!”


그러던 와중 군인들이 기를 덥석 들고는 신경질을 내며 돌아갔다.


“저... 저... 저 녀석들! 진흙을 털지도 않고!”


늙은이의 오지랖을 들은 젊은 군인들은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곤 한숨을 쉬며 갈 길을 갔다.

어지러운 시국에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는 이야기가 곳곳에 퍼졌다.

황하에서 큰 홍수가 나, 황하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마을에까지 비통함과 슬픔이 찾아온 것이었다.

몇몇의 마을 사람들은 성당으로 향했다.

힘든 일이 있을수록 사람은 어딘가에 의지가 필요해 보인다. 성당은 낮에는 음악과 노래소리고 가득했고 저녁에는 울음과 비통으로 가득했다.

성당에서 신부의 사제로 노역하는 진은, 일본인 선교사와 함께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의 노력은 이윽고 결실을 맺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이 일을 계기로 점차 성당에 자주 방문하게 된 것이다.

성당의 사람들은 이때다 싶었는지 홍수 대란을 기점으로 가정 방문을 많이 드렸다. 특히, 어르신들이나 과부, 아니면 홀로 남겨진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였는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무뚝뚝하던 진의 선임자로 보이는 자가 유독 눈에 띄였다는 점이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나뿐 아니라 많은 여자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북경에서 온 그 사람 말이야. 꽤 괜찮은 거 같지 않아?”


“그러게. 뭐 종교를 전파하는 사람이니 어련하겠어?”


“그래도 그런 거 치고는 생긴 건 꽤 차갑게 생겼단 말이지. 완전 반전이야. 반전! 호호.”


“에잇! 그런 소리 하지도 마! 그 놈이 일본 놈이래!”


“그게 왜?”

“몰라서 묻나?! 일본 놈들이나, 양놈들이나 다 똑같은 놈들이란 말이지!”


“에휴, 그런게 우리랑 무슨 상관인가. 당장 내일 뭘 해 먹고 살아야 될 지도 모르겠는데 말이야.”


“하하하하. 그러게?”


“다~~~~ 똑같다! 양놈이나, 쪽바리나, 요놈들이나!”


늙은 노파의 갑작스러운 고함 소리에 모두가 놀라 쳐다보았다. 노파는 갑자기 무슨 심술이 났는지 볼에 바람을 불어넣고는 혀를 끌끌찼다.


“어머나! 갑자기 왠 고함이래~”


“시끄럽다! 하여간 밑구녕에 뭘 쑤셔 넣을 생각만 하는 아주 더러운 년들!”


상스러운 노파의 말에 모두가 하나같이 상대해서는 안 될 인물이라고 깨달았는지 아무도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빨래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즈음 보니 심술궂은 노파도 허리를 펴며 집으로 돌아갈 거 같았다. 갑자기 호기심이 들어 그녀에게로 갔다.


“할머니! 제가 좀 들어드릴까요?”


“뭐, 그럼 좋지.”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그녀는 빨랫감을 나에게 던지듯 넘겨주었다. 그녀는 곧장 뒷짐을 지며 자기 집으로 나아갔다.

걸어가며 노파를 관찰했다. 적어도 오십은 넘어 보였는데 몸의 선이 매우 아름다웠다. 키도 컸으며 걸음걸이는 어떤 아가씨들보다 강하고 당당했다. 그런 모습에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뭐야. 앉아 있을 때는 몰랐는데 노파가 아닌가...?’

노파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잠깐 서서 뒤를 돌아보며 말 붙였다.


“뭐해? 무거워? 내가 좀 도와주리?”


“아. 아니요 괜찮아요.”


“칫.”


답답했는지 노파가 다가와 자신의 빨랫감을 들고 갔다.


“따라와. 그래도 고마운데, 간단한 요기라도 대접하지.”

노파의 집에 다다르자 노파는 빨랫감을 던지고 주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빨래 좀 널어줘.”


몇 없는 빨래를 다 널자, 노파가 군것질을 한가득 가지고 왔다.


“헤에. 너무 많은 거 아닌가요?”


“젊은 년이... 많이 먹어.”


“같이 먹어요.”


“흐흐....”


노파는 별말 없이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노파가 준 다과를 하나 집어 먹었다. 달콤한 맛이 입안에 퍼져 나도 모르게 발을 동동 굴렀다. 한 입 베어 먹은 다과를 잠시 옆에 두고 차를 한 모금 했는데 알싸한 맛이 다과의 단맛과 어울려져 조화로웠다.

노파는 방에 들어가 도저히 나올 생각을 안 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약초 태우는 냄새가 났는데 머리가 어지러웠다.


냄새가 심해지자 노파가 들어간 방의 문을 두드렸다.

두드린 문에 인기척이 없어 조심히 문을 열자 노파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말했다.


“문 닫아...”


사람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본 나로써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문을 바로 닫자 문 너머로 노파가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조금만...”


노파는 서른이 조금 넘은 여자였다. 그녀는 십 대 때부터 아편을 했다고 한다.


“너 양놈들 본 적 있어?”


“네? 아니요...?”


“그럼 검은 놈들도 본 적 없겠구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온 피부가 검은 사람이 있어! 그 사람들은 양인들이 노예로 부리며 살지.”


“아... 그래요... 근데 그건 왜...?”


“그 녀석들도 재밌다.”


“...”


“이 나라 남자들이나 양놈들이나 여자한테 대하는 건 똑같은데, 그 검은 놈들말이야... 그것들은 사람 취급도 못 받거든? 근데.... 하하하하하!!”


그녀는 입술을 씰룩거리더니 숨이 넘어갈 듯 웃어댔다.


“왜요...? 갑자기...?”

“그것들도 내가 여자라고 꼴에.... 어... 참... 웃겨 남자들이란.... 검은 거나, 흰 거나, 털 많은 것들이나... 다 똑같애....”


문득 이 여자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싶었다.


“나는 니니야. 이곳에 온 지 별로 되진 않았어. 그래서 조용히 살다 가려 했는데, 그... 입에서 냄새나는 년들이 입을 열어 지껄이는데, 너무 듣기 싫더라고.... 그래서.... 뭐.... 한 번씩 오라고.”

“아..... 네!”


이상한 여자지만, 뭐 나쁘진 않은 사람 같았다. 이상한 경험을 흥미롭게 생각하며 콧노래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한가로이 빨래 바구니를 들고 집에 돌아가던 중, 할머니를 만났다. 어딘가 좋지 않은지 일본인 신부가 옆에서 부축하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할머니!”


소리지르자 그때서야 두 사람이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야?”


“할머니가 발을 헛딛으셔서.... 제가... 도와드립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가자, 할머니 내가 부축해줄게.”


“어.... 제가....”


“아니요. 제 할머니니 제가 챙겨야죠. 감사합니다!”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할머니 옆구리를 꽉 부여잡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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