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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공사 Jun 04. 2022

태초에 태어난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주간 오공사 #16


그냥 그냥 진짜 아무런 생각 없이 카페에 앉아있었어. 핸드폰은 보고 싶지 않아서 덮어둔 채로 다양한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했어. 얼굴엔 감정이 쓰여있잖아. 무덤덤함, 즐거움, 피로감. 다양한 감정을 읽어버리다가 문득 궁금해졌어. 태초에 태어난 감정은 무엇일까


놀람일까? 태어나 처음 본 것들에 경이를 느껴야 하니 놀라움일 수도 있을 것 같아.

아픔일까? 무엇이든 쉽게 태어나는 건 없으니까. 아기들도 세상으로 나올 때에 스스로 숨을 쉬고, 어둠이 빛이 되는 순간 그 모든 게 아주 고통스럽다고 하더라고.

경계일까? 뭐든 처음은 두려우니까, 목을 뺀 채로 눈치를 보게 되니까.


아니면 혹시 사랑일까? 사실 사랑이 처음이라고 믿을 그럴싸한 이유는 하나도 없어. 그냥 왠지 사랑이면 좋을 것 같으니까. 세상이 어느 순간, 어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거라면, 그런 거라면 사랑으로 빚어서, 사랑을 넘치게 채워서 만들었다면 얼마나 좋겠어. 모든 감정의 바탕에, 제일 처음에, 감춰놓은 밑바닥에 사랑이 있다면. 내 일상에서 만난 모든 고통에서 그 근본은 사랑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날이선 모든 행동과 말투에도 사랑이 근본이라면, 모래바람같은 푸석푸석함도, 타들어가는 걸음에도, 녹아 증발해버리고 싶은 몸뚱이도, 마지막으로 날 농락하는 신기루 따위도. 그 모든 것들도 이겨낼 수 있을 텐데. 온 세상이 날 사랑한다고 속아 줄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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