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미소에 가려진 공포와 두려움

경험은 쌓이지 않았다, 트라우마가 쌓였을 뿐이다.

by 한결온

사회는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한 회사를 면접 보러 갔는데, 그 자리엔 내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면접을 진행한 사장은

“남자친구 있어요?” 하고 물었고,

이어 “전 직원은 남자친구가 없다고 했었는데, 갑자기 있다고 거짓말을 해서 나오지 말라고 했어요”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덧붙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운전은 할 줄 알아요? 연수는 시켜줄게요. 그래야 주말에 같이 다닐 수 있으니까요.”

말의 흐름은 아무렇지 않게 흘렀지만,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내가 생각했던 일에 대한 면접이 아니구나.

여자 친구를 찾으려는 것이구나.

분명 주어진 업무가 있는 사업체인데…

채용공고의 내용과 너무 다른 내용의 면접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순간,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무섭고, 어색하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웃으며 맞장구를 치는 것뿐이었다.

‘지금은 웃어야 해. 그래야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어.’

그 생각 하나로 정신을 붙잡고 있었다.

면접이 끝나고,

나는 사무실을 도망치듯 나왔고

손과 떨리는 목소리로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순간 내 안의 안전 경보가 울렸고,

당시의 나는 미소로 그 상황을 회피 했고,

그것은 공포와 위협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너무 순진했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세상이 그렇게까지 기울어져 있다는 걸 몰랐다.

직무 역량이 아니라 다른 의도로 사람을 평가하는 면접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요즘의 사회초년생은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고,

더 많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분위기이기에 다르지 않을까 싶다.

공포와 두려움을 미소로 대신할 수 밖에 없었던 그때의 나와는 다른 선택 말이다.


상담사의 시선으로 본다면

이런 경험은 단순히 “불편한 면접”이 아니라, 권력 불균형에서 비롯된 경계 침해(boundary violation)로 봐야 해요.

즉, 직무와 상관없는 사적인 질문이나 모욕적인 기대, 사적 친밀감을 전제한 언행은 모두 심리적 안전(sense of safety)을 해치는 행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흔히 보이는 반응 중 하나가 바로 ‘동결(freeze)’ 반응이에요.

* 동결 반응(freeze response)은 왜 생길까?

2022년 발표된 최신 신경심리학 연구(LeDoux & Pine, Nature Reviews Neuroscience)에 따르면,

위협적인 상황에서 사람의 뇌는 자율신경계를 통해 세 가지 반응 중 하나를 택해요:

싸움(fight)

도망(flight)

동결(freeze)


그 중 동결 반응은 신체적으로 반응하지 못하고, 상황을 최대한 "조용히" 넘기려는 생존전략입니다.

말 그대로 “얼어붙는 것”이죠.

당시 당신이 웃으면서 그 자리를 넘긴 건,

사회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뇌가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한 방식이었어요.

이건 생존 본능이지, 절대 무능력이나 부족함이 아니에요.


* 그리고 이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심리적 타격은 “내가 왜 아무 말도 못했을까” 하는 자기비난(self-blame)이에요.

하지만 기억해요.

부적절한 질문을 한 사람이 잘못한 거지, 그걸 참은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기억을 꺼내고, 글로 정리하며 해석하고 있다는 건

당신이 단지 ‘버텼던 사람’이 아니라, 회복을 시작한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비슷한 상황을 겪은 당신에게

혹시 당신도,

면접 혹은 업무상 만남에서 직무와 관계없는 불편한 질문을 받아본 적 있나요?

혹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참아야 했던 기억이 있나요?

그럴 때 아래 두 가지 방법을 스스로에게 적용해보세요:


1. “이상하다고 느꼈던 감정”을 믿어주세요

감정은 경고 시스템이에요.

그때 당신이 불편했다면, 그 상황은 분명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유난스러운가?”가 아니라, “내가 감지한 위험은 유효했다”고 받아들이세요.


2. 당시의 나를, 지금의 내가 감싸 안아주세요

“왜 그땐 아무 말도 못했지?”는 이제 그만.

이제는 이렇게 말해보세요:

“그때 나는 그 상황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이해하고, 대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에요.


혹시 당신도, 그런 면접을 본 적 있나요?

사회 초년생이었던 당신,

경험이 많지 않았던 당신,

그 순간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당신을,

지금은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나요?

그때의 당신에게 지금,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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