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피했던 나, 그리고 되돌릴 수 없던 하루
입사한 지 세 달도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직전 회사에서 인간관계로 큰 어려움을 겪었던 나는, 이번에는 조심하고 싶었다. 적당히 거리 두고, 상처받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와 비슷한 입사 동기 한 명과만 가까워졌고, 우리는 점심도, 산책도 함께 다니며 회사 사람들과는 조금 거리를 뒀다.
그런데 곧 우리는 눈에 띄게 소외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사장은 직원들에게 은근하게, 때로는 대놓고 야근을 압박했다.
업무가 끝났음에도 무언의 눈치를 보며 늦게까지 남아 있어야 했다. 나는 그 룰에 동의할 수 없었다.
형식적인 야근은 비효율적이고 부당하다고 느껴졌다.
그럴수록 입사 동기와 나는 더 끈끈해졌고, 회사에 대한 불만을 서로에게 털어놓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과도 조금은 어울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용기를 내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인사과 과장이 나를 조용히 부르더니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말로는 팀 해체라 했지만, 속이 뻔히 보였다.
우리 둘을 내보내고, 사장이 원하던 특정 인물을 다시 들이려는 시도였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그리고 나의 유일한 동료였던 그 친구도, 하루아침에 회사를 떠났다.
그날의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곧장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직장 생활이 사람이라는 것이 무서워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속에 깊은 상처가 되고 있었다.
퇴직 위로금으로 한 달치 월급을 더 받았지만,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쫓겨났다’는 기억, ‘부당한 정치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감각,
그리고 ‘다시는 회사 사람들을 쉽게 믿지 않겠다’는 다짐이 마음속 깊이 박혔다.
무엇보다도 내겐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날 이후로는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일조차도 부담스러웠고,
어느 곳에서도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날까 두려워 숨이 막혔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한다.”
“회사 안의 정치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잘하지 못한다.
사회생활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나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살아남는 법을 모른다.
이건 어쩌면, 타고난 기질일지도 모르겠다.
이 상황은 단순히 직장에서의 해고 경험이 아니라,
조직 내 권력 구조에서의 소외와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가 일어난 사건으로 볼 수 있어.
심리학자 Kip Williams는 "사회적 배제는 신체적 고통과 유사한 신경 반응을 일으킨다"고 했어.
즉, 인간관계에서의 단절이나 무시, 소외는 실제 ‘상처’처럼 우리 뇌에 충격을 남긴다는 거야.
또한, 이 경험은 “직장 내 트라우마(workplace trauma)”의 전형적인 사례야.
트라우마는 전쟁이나 큰 사고뿐 아니라, 지속적이고 부당한 권력 행사나 통제,
그리고 그로 인해 느낀 무기력감(learned helplessness)을 통해서도 형성될 수 있어.
그 안에서 ‘왜 나는 싸우지 못했을까’, ‘왜 나는 관계를 잘하지 못할까’ 하는 자기비난은 방어기제로 나타나기도 해.
하지만 상담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불안정하고 권위적인 조직 시스템 안에서 건강하게 대응한 ‘거절’의 표현이었을 수 있어.
1. 트라우마 기억을 ‘경험’으로 바꾸는 글쓰기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이 글쓰기가 바로 그 첫걸음이야. 무슨 일이 있었고, 그때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지금은 어떻게 느끼는지 정리하면서 기억은 더 이상 ‘상처’가 아닌, ‘해석 가능한 경험’으로 재구성돼.
2. ‘정치’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정치는 꼭 거짓말과 배신만 있는 게 아니야. 때로는 관계를 유연하게 풀어나가는 전략이기도 해. 정치는 생존 기술이지, 성격의 문제가 아니야. 그러니 ‘나는 정치를 못한다’가 아니라 ‘나는 정직함과 가치에 맞는 방식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고 말해줘도 좋아.
갑작스러운 해고, 억울한 평가, 회사 안의 정치에서 소외된 기억…
그 기억 속 당신은 어떤 감정으로 버티고 있었나요?
그때의 당신에게, 지금은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