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받을 자격과 촉발 사건

by 한결온

“그거 너 업무잖아.” 그 말에 무너졌다

퇴사 전, 평소처럼 프로젝트 관련 회의를 하던 중이었다. 늘 그렇듯 내 일은 정확하게 선을 긋고 움직이는 편이라, 이번 건도 내가 맡은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두 팀 모두에게 필요한 업무였다. 그런데 그 상사가 말했다.

“그거 너 업무잖아. 네가 해.”

그 말은 너무나도 뚝 떨어지듯 툭 던져졌고, 문제는 그 자리에 본인의 팀원들이 전부 함께 있었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동안 그와의 대화는 종종 불편했다. 감정이 실린 말투,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태도. 그래도 나는 “이 정도쯤은 넘길 수 있어”라며 참아왔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감정이 쿡, 하고 치고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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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아왔던 감정이 한순간에 터졌다

그 한마디에 순간 눈앞이 하얘졌다.

억울함, 분노, 모욕감, 그리고 ‘왜 하필 사람들 앞에서?’라는 자괴감이 뒤엉켰다.

몸이 반응했다. 답답한 마음과 함께 숨이 짧아지고, 목이 탔다. 어이없음에 말은 겨우 나왔다.

“내용 정리해서 주세요.”

딱딱하고 차가운 말투였다. 그리고 나는 회의실을 나와버렸다.

그 순간을 돌아보면, “왜 그렇게까지 감정적으로 반응했을까?”

그 질문이 자꾸 맴돈다. 그 사람은 그냥 무심코 한 말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왜 나는 그 말에 그렇게까지 무너졌을까? 늘 그래왔던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 말은 내 오래된 상처를 건드렸다

그날의 내 반응은 단순한 ‘화’가 아니었다.

그 말은 마치 이렇게 들렸다.

“너는 네 역할도 제대로 모르잖아.” “사람들 앞에서 너를 몰아세워도 상관없어.”

나는 늘 책임감이 강하다는 말을 듣고 살아왔다. 맡은 일을 꼼꼼하게 챙기고,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어야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첫 대면부터 시작된 서로에게 엇갈린 평가와 공개적인 압박은 굉장히 치명적인 조합이었다.

그건 단순한 업무 배분 문제가 아니라, 내가 ‘존중받을 자격이 없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상담사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이런 상황은 ‘존재 위협’에 가까운 감정적 반응을 유발할 수 있어.

특히 완벽주의 성향이 있거나, 어릴 적부터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를 눌러왔던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 장면에서 나타난 심리 반응은,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방아쇠(trigger)” 현상이라고 해.

어떤 말이 현재의 나보다 과거의 상처를 자극했을 때, 반응이 과도하게 증폭되는 현상이지.

또한, 이런 장면에서 자주 나타나는 인지왜곡 중 하나는 '개인화'야.

상대의 말투나 행동이 사실은 시스템의 문제 거나 상대의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종종 “내가 잘못해서 이렇게 말한 걸까?”, “왜 나한테만 이래?”처럼 모든 걸 나로 끌어당겨서 해석하곤 해.




비슷한 상황을 겪는 당신에게

혹시 당신도, 누군가의 툭 던진 말 한마디에 하루가 무너졌던 적이 있나요?

그 감정은 당신이 예민해서가 아니라, 이미 마음속에 오래전부터 남아있던 ‘상처의 자리’가 건드려졌기 때문일 수 있어요.

이럴 땐 아래 두 가지를 시도해 보세요:

그날의 감정을 시간순으로 써보세요. 감정의 흐름(예: 당황 → 분노 → 억울함 → 슬픔)을 정리하는 것은, 감정의 주인이 다시 '나'가 되도록 도와줍니다.


내 편이 되어주는 질문을 던져보세요.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났을까?” 대신, “무엇이 나에게 상처였을까?”, “어떤 말이 나를 작게 만들었을까?” 이런 질문은 당신을 다시 자기중심으로 회복시키는 힘을 가집니다.




혹시 당신도, 그런 말에 속이 무너졌던 날이 있나요?

그 말을 한 상대는 잊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당신은 그 말을 안고, 하루를 버텨야 했지요.

그때의 당신에게, 오늘은 어떤 말을 건네주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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