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케어러(Young Carer).

테리 할머니의 세번째 남편 이야기

by 샐리


영국에 와서 정착하고, 집가까운 곳에 있는 교회를 나가게 됐을 때였다.
어느 일요일 아침, 예배당 한쪽에서 단정한 단발머리에 깔끔한 옷차림의 할머니 한 분이 안내를 하고 계셨다.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분명했고, 늘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분의 이름은 태리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얼굴을 익히고, 눈인사도 하게 됐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조용히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몇 주 후, 휠체어에 앉은 태리 할머니가 다시 교회에 나타났다.
몸이 많이 불편해 보였고, 말도 힘겹게 하셨지만
그 옆에는 늘 다정한 표정의 한 남자가 함께하고 있었다.
그는 휠체어를 밀어주고, 예배가 끝나면 커피도 챙기며 태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참 착한 아들이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 내가 나중에 저렇게 아프게 되면, 우리 아들도 나를 저렇게 돌봐줄 수 있을까?’

하지만 곧 나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성실하고 착한 아들이지만, 그건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어느 날 친구 리나에게 툭 하고 말을 꺼냈다.
“태리 할머니는 참 좋겠다. 아들이 매주 교회로 모시고 오고, 예배도 같이 드리고…”

리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들 아니야. 남편이래.”

나는 웃어넘기려다 말문이 막혔다.
“무슨 말이야? 아무리 봐도 아들이잖아. 얼굴도 닮았고… 적어도 스무 살은 어려 보이던데.”

리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태리가 여든이고, 닉이 예순이래. 나도 처음엔 아들인 줄 알았어.”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반신반의했다.
그러다 다른 교인 로래인에게 다시 한번 넌지시 물었다.

“그 태리 할머니 있잖아… 복 많아 참 많으신 분같아. 저렇게 아들이 매주 함께 와서…”

그러자 로래인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아 태리, 우리 엄마야. 옆에 앉은 사람은 엄마의 세 번째 남편이고, 내 나이보다 두 살 많아.”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여든의 아내와 예순의 남편. 그리고 그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자녀들.

그때부터 나는 다시 그들을 보기 시작했다.
예배 중에도, 끝난 뒤에도, 커피를 나누는 순간에도
그는 항상 태리 옆에 있었다.

한 번은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를 나눴다.
커피 두 잔을 들고, 태리에게 한 잔을 건넸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컵을 받으며 말했다.

“나는 아파… 나는 아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멈춰섰다.
그 순간, 닉이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감싸고 컵을 들어 올렸다.
마치 아기를 다루듯 조심스레, 그녀의 입 가까이 가져다 댔다.
흘러내리는 침은 그의 손수건으로 조용히 닦였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차마 ‘감동적이다’라는 말조차 삼가게 되었다.


그 다음 주, 닉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태리 할머니 옆엔 낯선 여성 두 분이 함께 앉아 있었다.
‘혹시 지쳤나… 그럴 수도 있지…’ 마음속에 스치는 생각을 숨기며 다가갔다.

그분들은 태리의 여동생들이었고, 닉은 그의 가족들과 여행 중이라고 했다.
2주간은 여동생들이 교대로 태리를 돌보며 교회에 함께 나올 예정이란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진짜 연대가 이런 거구나.
괜한 오해로 닉을 의심했던 내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며칠 후, 로래인이 말했다.
“엄마가 스페인에 집이 있어서 청소도 할 겸 2주간 다녀오려고 해.”

나는 장난처럼 말했다.
“나도 같이 가고 싶다.”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7~8월은 비싸니까 9월에 가자. 같이 가자.”

나는 태리 할머니가 갑자기 멋져 보였다.
스페인에 별장이 있고, 스무 살이나 어린 남편이 있으며,
그 남편은 지금 그녀의 손발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 날 예배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문득 TV에서 들은 단어가 떠올랐다. 영 케어러(Young Carer).

어릴 때 조부모 손에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
그들을 돌보는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학업이나 일을 포기하고도,
자신을 키워준 손을 외면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단어가 꼭 닉과 맞닿는 건 아니지만,
그의 역할과 마음은 영 케어러와 닮아 있었다.

믿음은 없지만, 아내의 믿음을 따라 예배당에 나오는 그 남자.
고통 속에서도 ‘나는 아파’라고 반복하는 아내의 손을 놓지 않는 그 사람.

그가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 세상의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이라는 걸
나는 이곳, 작은 영국 교회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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