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술 Dec 13. 2023

스페인을 떠나며

마드리드에서의 마지막 여정

귀국 행 비행기가 마드리드에서 출발하는 일정이라 어쩔 수 없이 마드리드로 돌아가야 했다. 말라가에서 국내선을 타고 마드리드로 도착! 무수하게 뒤졌던 마드리드 호텔 중에서, 그나마 평점이나 가격면에서 만족스러웠던 곳이 수 년 전 남편과 함께 묵었던 호텔이었다. 그곳이라면 이미 검증이 된 데다 주변이 친숙해 좋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호텔이름이 비슷한 다른 지점의 호텔명으로 잘못 구글맵에 입력하는 바람에 도보 15분여를 다시 돌아가야 했지만, 결국 늦은 밤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마드리드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컵라면 따위로 떼우기는 싫었다. 또 찾다 보니, 어느새 숙소 10분 거리, 대기를 길게 해야 하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대기줄이 엄청나 1시간 정도 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 어떤 여성 관광객에 양해를 구하고 옆좌석에서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메뉴는 여지없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Gambas al ajillo 와 문어 구이다.


이 맛은, 흡사 바르셀로나에서 먹었던 그 식당과 비슷한 메뉴들과 맛을 하고 있었다. 양은 적었지만, 적당하게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밤을 달래기에 더 없이 괜찮은 메뉴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늘 이것들을 그리워할테니까...^^


벌써 밤 12시가 넘었는데 이 곳은 아직 불야성이다. 대기하는 줄은 거의 없어졌지만,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꽉 차 있다.


< pulpo a la gallega(좌:갈리시아식 문어요리), Gambas al ajillo (우:마늘소스 감바스),)>

호텔로 돌아와서는 짐을 싸느라 분주하게 30분여를 왔다 갔다 하고 바로 쓰러졌다. 새벽에 쓰레기차가 출동해 수거해가는 소리를 잠깐 들었지만 곤히 잠을 잤다. 깨어보니 8시 20분! 아뿔싸, 근처에 PCR테스트를 예약한 곳이 9시인데 잘못하면 늦겠다. 간단하게 과일로 배를 채우고는 구글맵을 보면서 열심히 찾아갔다. 다행히 코를 깊게 찌르지 않았고, 의료진들도 친절했다. 


돌아오는 길에 메뉴 음식들이 사진이 얼마나 식탐을 자극하는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안으로 들어가 전형적인 스페인 간식, 츄러스와 핫쵸코를 먹기로 했다. 원래 밀가루 음식을 자주 먹지는 않지만,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치팅이다. 갓 구웠는지 바스락거리며 설탕의 달콤함과 더불어 혀를 자극한다. 핫초쿄는 미끄덩하면서도 쵸콜렛의 단맛과 물컹함이 신경세포를 일깨운다.


<아침식사를 한 타파스 식당>
<츄러스와 핫초코>

아침식사를 끝내고 호텔로 돌아왔다. 이제 출국까지 남은 시간은 3시간 정도이다. 일단 어제 꾸린 짐을 챙기고 체크아웃을 한다. 호텔 직원에게 이 근처에서 둘러볼 수 있는 명소를 3군데만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Retiro 공원, Mayor 광장, 티센 미술관을 얘기한다. 티센 미술관과 마요르 광장은 예전 여행에서 다녀왔던 곳이니 가 보지 못했던 Retiro 공원부터 돌기로 했다. 그 공원은 아름답지만 거대하다는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나왔는데, 3시간동안 3곳을 다 돌기는 커녕, Retiro 공원만 제대로 보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공원 입구에서부터 직감했다. 벌써 중천에 떠 있는 태양을 정면으로 받으니 입구 초입부터 손과 다리가 뜨겁다.


공원내부에는 곳곳에 악기를 켜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거나 잔디밭에서 독서를 하는 시민들 혹은 보트를 타러 오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광활한 공원에서의 활기를 더하고 있었다. 다양한 모습으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공원 자체가 워낙 거대하니, 인파로 인한 피곤함이나 어수선함 보다는 여유와 평화가 느껴져 좋다. 한 나라의 대도시에서 느껴지는 여유가 새삼스럽다.


공원 어디에서 셔터를 눌러 대어도 곳곳이 그림이 된다. 이 나라를 곧 떠나야 하는 시간이 카운트다운처럼 다가오며, 내 마음은 초조해진다. 돌아가는 길에 부동산 agency 벽보에 붙어있는 월세 정보들이 내 시각을 거쳐 나도 모르게 머리에 입력된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Retiro 공원


Retiro 공원 내부 호수 -보트를 탈 수 있다
Retiro 공원-한적한 잔디밭에서의 여유
Retiro 공원- Crystal Casa(유리 조형물 건축)


3시간은 쏜살같이 훌쩍 지나가고, 이제 바로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전날 밤 찜해 두었던 식당에서 메뉴를 둘러보고 있는데, 우유부단한 내 상태를 눈치챘는지 뒤에 온 스페인 현지 손님이 맛있는 곳이라며 나를 부추긴다. 본인들이 먼저 들어서며 나를 맞아주라고 직원에게 이미 부탁까지 해 준다. 얼떨결에 들어가 다소 소란스럽고 정신없어 보이는 길이지만 테라스 쪽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의 메뉴, Menu del dia 를 마지막으로 시킨다. 이름은 Plato Madrileno. 일명 ' 마드리드인들의 요리'.

스페인 출국 전 마지막 식사- Plato Madrileno

정신없이 식사를 휘리릭 마치고 호텔에서 짐을 찾아 공항으로 향했다. 이제 정말 한국으로 가는구나.

운 좋게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탄다. 한 시간여를 달려 금새 도착하고 수속을 마쳤다.


마드리드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돌아가기 전에, 마드리드에 있는 친구에게 작별을 고한다. 2주라는 시간이 꿈처럼 지나갔다. 어느 스페인 작가의 소설 제목이 문득 떠오른다. “No me digas que fue un sueno”(모든 것이 꿈이었다고 말하지 말아요). 지나간 시간들과 추억들이 일장춘몽처럼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보름 동안 일어난 일들이 최근 일 년 살아낸 시간보다 더 많은 기억으로 생생하게 내 세포에 각인되어 있다.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꿈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생각해보게 된다. 그 동안 죽어 있던 내 마음에 하고 싶은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을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스마트폰 메모장에 이뤄질지 모르는 꿈의 목록들을 적어 나갔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들을 생각나는 대로 써 본다. 비행기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폰을 안에 집어 넣었는데 폰의 그림 그리기 기능이 켜져 있었나 보다. 이어 적어 나가려고 다시 들여다보니 부지불식간에 호주머니안에서 움직일 때마다 선이 그어져 있었는데 후안미로의 그림처럼 파란색의 추상화 같은 낙서와 내가 적어 놓은 텍스트가 혼재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무엇이든지 지금 내가 하는 생각과 바램이, 내 미래를 바꿔 놓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그리고 또 어떤 식으로 돌아오게 될지 앞으로의 나날들에 한껏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지며,

지난 2주간의 짧다면 짧은 일정에 안녕을 고한다.


다시 또 만나자. 


나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준,

삶에 대한 애정과 에너지 그리고 따뜻함을 다시 느끼게 해,

 

스페인, 고맙다!



이전 12화 Mijas-안달루시아의 따뜻한 정기를 제대로 머금은 곳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