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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술 Dec 13. 2023

에필로그

스페인이 나에게 남긴 것

- Just be yourself!

우리는 각양 각색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한국은 물론 세계 어느 곳보다 살기 편하고 효율적인 곳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유독 치열한 경쟁 시스템, 여유 없고 조급한 사회 분위기에 번아웃이 왔거나 극심한 피로감을 느낀다면 분위기 전환을 위해 단기 체류 혹은 해외 여행을 권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살기에 좋지 않은 곳이라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넓고 다양하게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여러 이면을 보면서 오늘 내가 한국에서 느꼈던 상대적 박탈감이 지구 어딘가에서는 매우 행복하고 사치스러울 수 있는 고민이며, 행복을 규정짓는 것은 물질도 아니고, 지금 여기서 나 혼자서도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다면 그 누구와도 그럴 수 있으며, 어디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스페인 여행중 어디에서 그것을 느꼈을까? 딱히 그것을 꼬집어 말해 보라면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 전반에, 그들의 일상에서, 식문화와 거리를 부유하는 그 공기에 녹아 있는 것만 같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 필요는 없다. 어떻게 하면 내가 정말 행복감을 느끼고 뿌리깊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문제이다. 세상의 잣대로 평가할 수도, 타인이 정해주지도 않는 문제이다. 어릴 때부터 천편일률적으로 사회 혹은 학교가 정해주는 답안지에 길들여 살아왔다면, 이제 당신이 당신만의 답을 그려 나갈 때이다. 객관식의 답을 찾는 것보다, 훨씬 더 시간이 걸리고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그것은 찾아낼 만한 가치가 있다. 나 또한 그것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바르셀로나 거리

-관계의 중요성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누군가의 친절이었다.


흔히 '친절'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한국에서의 나는 가장 먼저 백화점 직원의 친절이 떠오른다. 내가 돈을 내는 대가로, 혹은 상업적인 기대에 의한 작위적인 미소나 예의 바른 태도 같은 것. 혹은 어떤 브랜드 이미지를 대표하기 위한 인위적인 노력 같은 거 말이다. 그런 상업적인 친절은, 아무래도 관계에 힘이 들어가고 피곤하다. 내가 어떤 자본적인 대가를 치루지 못하면, 혹은 그 곳을 나오면 바로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것들이다. 


한국에서 누군가 나에게 갑자기 친절하거나 잘해준다면, 무언가 받을 것이 있거나 이용가치가 있어서 그런가 하고 먼저 의심부터 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모든 사회곳곳 에서 사람들과 눈치 없는 경쟁을 치루기에 바쁘다. 대중교통 안에서는 알 수 없게 자리경쟁, 종종 밀치고 지나가면서도 한 마디 없는 시민들, 늘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 하거나, 끊임없이 이기고 지는 게임이 끝나지 않는 사회의 시스템들... 어쩌면 한국 사회는 경쟁이 너무 과도하다 보니 남을 배려해 줄 여유가 부족한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경험한 친절, 28인치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바로셀로나 숙소로 가기 위해 지하철에서 내렸을 때, 역에 엘레베이터도, 에스컬레이터도 없어 난감했다. 어쩔 수 없이 짐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무거운 짐을 낑낑 이면서 올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깨에 잔뜩 들어갔던 힘의 무게가 가벼워짐을 느꼈다. 뒤를 돌아보니 어린 여대생으로 보이는 여성이 내 캐리어를 밑에서 같이 들어주고 있었다. 순간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다. 표정과 언어로 온 마음을 다해 그녀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마드리드 친구집을 떠나 혼자 하는 여행의 시작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는데, 누군가의 친절이 나의 마음 속 얼어 있던 깊은 곳을 녹여주는 듯했다.


나중에 한국에서 루마니아 친구와 만나서 그 얘기를 했더니, '그거 우리 유럽 문화권에서는 너무 당연한 거야. 나는 한국에서는 누가 짐을 들어줘 본 경험이 한 번도 없어' 라고 답한다. 아니 누군가 그렇게 한다면 짐을 도둑맞거나 소매치기 당하지 않을지 걱정부터 해야 할지 모른다.


그 외에도, 길을 물어보느라 혹은 무언가를 기다리며 우연히 만났던 무수한 스페인 사람들, 식당 종업원들과의 단순히 서비스나 음식을 사고파는 이상의 살아있는 대화들을 떠올려 본다. 프로세스의 효율성보다 사람들과의 진정성 있는 대화를 중시하는 그들의 문화에 비록 느리지만,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외롭지 않았으며 더 행복감을 느꼈다. 한국에서의 삶은 세상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고 효율적이며 편리하다. 그러다 가끔은 그 가운데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느끼거나, 정작 우리 삶에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피상적으로 흘러가거나 진정성 어린 관계가 변질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꿈꾸어 본다. 효율적인 시스템이 편리한 한국과 영혼이 살아있는 스페인을 자유롭게 오가는 삶! 

마드리드 - 친구와 함께 같이 간 레스토랑

**여행을 끝내며**

아쉬움이 남는다면, 그 아쉬움은 사실 매번 여행할 때 마다 느끼는 같은 내용이다. 한 도시들을 좀 더 여유 있게 돌아보지 못한 것이다. 특히 1박의 시간으로 충분히 더 돌아보지 못한 너무 아름다웠던 토사 델 마르, 지로나와 같은 소도시들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러나 안다. 늘 그런 아쉬움들이 다시 나를 그곳으로 불러들인다는 것을. 미련과 아쉬움이 돌아오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혼자 하는 여행이라 외로울 거라 생각했지만 그 2주의 여정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했고 내 영혼은 풍요로웠으며 충만했다. 무언가 각박했던 한국에서 벗어나 경쟁보다는 삶을 즐기는 여유와 행복이 더 상위 가치인 그들의 세상에서 나의 마음도 그렇게 전염되었다. 말을 하는 것이 즐거웠다. 내가 말하는 것을 즐긴다는 것을 그곳에서야 알았다. 물론 당연히 내 모국어보다는 서툴지만, 역설적이게도 한국에서보다 내 감정을 더 많이 표현하고 나에 대해 더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사람들과의 소통이 즐거웠다. 개인적인 신분을 드러내야 하고 알게 모르게 비교하고 당하는 그 숨막힘과 미묘한 경쟁심이 없어서인지 나도 모르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전혀 다른 이질적인 문화가 더 편하게 다가온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여행은 그 곳에 완전하게 "빠져드는 것"이다. 그곳의 사람들처럼 localization化 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 멕시코에서 배웠던 내 스페인어가 스페인식 스페인어처럼 발음하고 그들과 같은 억양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관광지를 얼마나 많이 보았건 중요하지 않다. 관광 책자나 여행 커뮤니티에서 리스팅 되는 핫 플레이스를 다 찍었다고 그 장소를 ‘제대로’ 아는 것은 아니다. 


그 곳에서 경험하게 된 문화에, 음식에, 풍경에 혹은 그들과의 대화와 만남에 빠져들었다면, 내 기준에, 그것은 분명 만족스럽고 순도가 높은 잘한 여행이다. 여행하는 내내 노래처럼 들리던 스페인어가 들려 행복했고, 그 어떤 음식을 먹어도 내 혀의 미각을 감동시키고 황홀하게 했던 음식들, 무엇보다 늘 경계를 멈추지 않았던 사람들을 향한 가드를 소리 없이 녹여준 그 곳 사람들에게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이제 나의 일상에 꿈을 하나 갖게 했다. 우선은 1년에 1개월 이상씩 현지인처럼 살아보기. 그리하여 또 누가 아는가, 이곳에 와서 정착하게 될런지도… 무슨 일을 하던지간에 말이다.


간절하게 원하는 것을 알기만 하면, 나도 모를 힘이 생겨나고 그리하여 그것을 실현시킬 힘이 나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근거 없는 자신감, 그것의 정체는 바로 이거다. 나를 들뜨고 즐겁고 행복하게 만드는 spiritual joy 의 기운이 이 곳에 있다는 것을. 그것을 내 몸 전반 속속들이 살아나던 내 세포가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그곳을 다닐 때 나도 모르게 들썩거리던 내 어깨가 말해준다. 미소가 다시 살아나던 내 얼굴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다.


만약 당신의 삶에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듯하고, 우울증에 빠져 있다거나,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일단 떠나라고 얘기하고 싶다. 물론 여행을 다녀와서도 현재 당신의 삶에서 겪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는 여전히 미제인 채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풀어 나갈 수 있는 보다 더 다른 시각의 해결책 혹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혹은 문제였던 그것이 그곳에서 돌아온 순간 어느 새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혹은 그것을 풀어나갈 방법을 생각치도 못한 지점에서 열게 될지도 모른다. 혹은 그간 도저히 용기가 안나 시도 못해보았던 담대함으로 또 다른 길을 가지게 될지 모른다. 정형화되지 않은 그곳에서 다양한 세상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당신은 또 위로 받고, 에너지를 받을 것이다.


 

Marid Moncloa 공원에서 바라본 청명한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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