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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규 May 06. 2024

꿈의 씨앗은 언젠가 싹이 튼다



평상시 과일을 먹을 때 하찮은 씨앗 한 알을 보면 무심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보잘것 없는 씨앗이 땅속에 심어지고 시간이 지나면 싹이 트여서 씨앗일 때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모습이 된다. 인생에서도 꿈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 중요하다. 인생을 완전히 반전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1364년 경남 진주 씨앗이 몇 개 뿌려졌다. 씨앗은 대부분 죽고 그중에 하나가 살아남아 꽃이 피어 100여 개의 씨앗을 얻었다. 매년 재배량을 늘려서 1367년에는 동네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어 심어 기르도록 하였다. 10년 후 나라 전체에 보급이 되었다.     



 그 씨앗이 바로 목화 씨앗이었다     


 어렵고 힘들수록 꿈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그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해야 새로운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다. 시간이 남아서 씨앗을 뿌리는 것이 아니다. 도저히 시간이 없고 살기가 힘든 상황에서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그래야 씨앗이 자라 몇 년 후에라도 힘든 시기를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나는 대학 시절에 영문학을 전공했다. 영문학 교수님이 강의 시간에 맨손으로 들어오시더니 칠판에 긴 영어 문장을 쭉 써 내려가는 모습이 너무나 멋져 보였다. 순간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는 생각이 내 가슴에 불쑥불쑥 치고 올라왔다. 어떻게 하면 저런 모습이 될 수 있는가? 방법은 오직 토플 성적을 통해서 미국 유학을 갔다 와야 했다.      


 하지만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며 4남매를 학자금 마련으로 먹고살기 힘든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영어 학원에 다닐 수 없는 형편이었다. 카세트테이프라도 있으면 마음껏 영어 듣기도 하고 팝송도 듣고 싶었지만, 영어 학원비 달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었다. 독학 영어를 했다. 도서관에 틀어박혀 토플 관련 참고 서적들을 많이 활용했다.      



 엄마는 남자에겐 없는 촉이 있다고 한다.


 어느 날 저를 안방으로 부르더니 장롱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꺼내셨다. 

 “승규야. 이걸로 네가 사고 싶어 하는 카세트테이프를 사렴.”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명주 천으로 꽁꽁 싸매어져 있는 무언가를 내미셨다.

“이게 뭐예요? 엄마?”

”응 그거 금반지란다. 엄마가 한동안 부었던 곗돈을 타서 산 건데 이거 팔아서 카세트 사고 열심히 공부하렴!"      


순간 나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지금은 풍족한 시대라 아기 돌이나 생일에 누구나 금반지 한 돈은 살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당시에 농사를 지으셔서 4남매 학자금 마련조차 버거우셨을 것이다. 엄마는 저 금반지를 사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셨을까. 한 달 한 달 곗돈을 부으시며 저 금반지를 사서 손가락에 끼울 날을 생각하며 참고 참고 또 참으셨을까.     

  그 카세트테이프로 영어를 들을 때 내 귀에는 밤마다 허리가 아파서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허리야. “하셨던 엄마의 신음 소리도 같이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다짐했다.     



  반드시 영어를 잘 해내 성공해서 엄마를 편하게 모셔야지!’     


 나는 엄마가 하나밖에 없던 금반지를 팔아 준 돈으로 그 당시 유명했던 일본사 카세트테이프를 장만했다. 그리고 그 테이프로 영어를 녹음하여 듣고, 따라 하며 또 듣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영어 회화를 듣다가 지지면 팝송을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영어를 들으며 우리말로 번역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영어 문장이 이해가 되었다. 이렇게 힘겹게 익힌 영어가 토플 성적을 얻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점수는 ’535점‘.     


 당시에는 토플 점수 550점을 넘으면 미국 IVY리그를 포함한 TOP10 학교에 갈 수 있다고 했다. 아쉽게도 그 점수에는 미치지 못하고 유학 비용도 경제적 여건으로 여의치 않아서 미국 유학을 접어야만 했다. 하지만 꿈은 멈춘 것이 아니다. 때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내가 햐얏트 호텔에 영어 면접으로 들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롯데면세점에서 해외 명품 보석 유치 사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 사업이 신속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보석감정사‘가 필요했다. 그 자격증은 미국보석학회에서 받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보석 공부를 하려면 입학 허가를 위해 토플 성적이 있어야 했다. 인사팀에서 확인해 보니 보석학회에서 업무 관련 유학을 갈 수 있는 사람은 나와 다른 동료뿐이었다. 물론 4년제 정규 학부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는 미국 유학을 떠날 수 있었다. 대학 시절 간절히 바라던 미국 유학의 꿈을 13년 만에 실현되었다.     


 목화씨 한 알이 심어져 10년 후에는 나라 백성 전체가 따뜻한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유학 갈 돈이 없었지만, 독학으로 토플 공부를 해놓았더니 13년 후 미국보석학회에 공부하러 갈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씨앗을 뿌리면 언젠가는 그 싹을 보게 되어 있다. 지금 힘든 상황에 있을수록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기간은 5년이 될 수 있고, 10년 이상이 될 수 있지만 결국 그 보답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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