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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Dec 29. 2023

오늘의 운세 17

운이 풀리니 성취감을 느낀다

딸아이가 집에 왔다. 엄마와 커피를 마실 겸 다니던 본가 근처의 이비인후과를 들를 겸 겸사 겸사였다. 누나가 집에 들어서니 맹이가 어찌나 반기던지 저의 생명의 은인인 것을 알기나 하는 것처럼 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집에 맹이를 데리고 온 것은 딸아이다. 구덩이에 빠져있는 한 달쯤 된 맹이에게 손을 내밀어 건져왔던 것이다. 둘이 커피를 마시는데 맹렬하게 누나에게 치댄다. 안기는 듯한 톤의 야옹 소리를 내는 것을 보니 누나에게 뭔가 기대하고 있는 게 있어 보였다.

그러자 딸아이가 발톱이 얼마나 자랐나 보자며 맹이를 잽싸게 안았다. 간식을 그냥주기보다는 발톱을 깎아주고 난 다음 보상으로 주려는 모양이었다. 맹이는 발버둥을 쳤지만 꼼짝없이 잡히고 말았다. 내가 발톱 깎이를 찾는 동안 발톱을 검사하던 딸아이가 맹이는 유달리 발톱이 잘 자란다며 특히 며느리발톱이 많이 자랐다고 했다. 깨물기도 하지만 할퀴기도 하니 발톱을 깎지 않으면 곤란했다. 딸은 고양이 전용 발톱사나 되듯 맹이 발톱을 잘 깎았다. 맞은 편에 앉아서 나도 녀석이 바둥댈 때마다 앞발이고 뒷발을 잡으며 한몫 거들었다.

고양이 발톱을 자르는 딸을 보고 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기였을 때 딸은 손가락 빠는 습관이 있었다. 유독 엄지손가락을 빨아서 엄지손가락 마디가 늘 부르터 있었고 핏빛이 보일 때도 있었다. 더하여 이로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까지 생기더니 그것은 성인 때까지 이어졌다. 딸의 손가락은 이만저만 수난을 겪은 것이 아니었다. 어릴 적에는 숱하게 야단도 쳤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어두컴컴한 구석에 숨어서 손톱을 물어뜯거나 손가락을 빨았다. 손톱 끝만 아니라 손톱 밑의 살까지 뜯어내서 손가락 밑에는 핏물이 자주 고였다. 그러고 나면 며칠은 손톱 끝이 아프다고 징징댔다.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줬다. 물어뜯고 나면 아플 걸 알면서도 매번 하는 아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것이 아이 나름의 불안을 잠재우는 방법임은 나중에 알았다. 

그랬던 딸이 이제는 고양이 엄마나 되는 듯 맹이를 안고 발톱을 깎고 있다. 나는 고양이 발톱은 자르는 게 겁이 난다. 친정어머니의 내성 발톱은 잘라도 고양이 발톱은 아직 잘라보지 못했다. 너무 약해서 잘못 날을 놀리다가 아이를 다치게 할 것 같다. 어릴 적 손톱깎이가 없어서 연필 깎는 커터 칼이나 가위 등으로 손톱을 깎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그때는 내 손톱을 잘랐지 남의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 어릴 적에 내가 가장 난처했던 것은 손톱을 깎는다고 깎아주고 나면 아이들이 아프다고 울먹거릴 때였다. 그래서 아이들보다 더 여린 맹이의 발톱을 자르기가 겁이 나나 보다.

딸아이는 이제 손톱을 물어뜯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의 힘이었다. 숱한 엄마의 잔소리도 먹히지 않더니 지금 남편이 된 남자 친구를 만나고는 달라졌다. 남자 친구가 물어뜯은 손이 까칠까칠해서 손 잡기가 부담이 되었던지 물어뜯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하였다는 것이다. 딸은 연애를 위해 습관적으로 손톱 물어뜯은 버릇을 고치려고 애를 썼고 그 때를 같이하여 치아 교정에 들어가게 돼 그 버릇은 자연스럽게 없어지게 되었다. 

고양이 발톱이 빨리 자라는 것은 고양이가 스크래쳐 긁기를 하지 않아서라는 말이 있다. 집에 찜통 스크래쳐가 있기는 해도 맹이는 뭉크에 비해 스크래쳐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 때문에 맹이는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는 누나에게 발톱을 지적받는 것일 게다. 맹이는 뭉크가 썼던 오래된 스크래쳐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일까. 아무래도 맹이를 위해 집에 새 스크래쳐를 들여야겠다.(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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