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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일어난 일

by 인상파

한밤중에 일어난 일


설이 다가와 어머니를 모시고 형제들과 점심을 먹었다. 명절 차례 대신이었다. 작년까지 명절 차례를 남동생이 지냈는데 얼굴 보는 의미라면 번거롭게 굳이 차례상을 차리기보다는 간편하게 밖에서 한 끼 식사로 때우자는 의견이 나와 그렇게 됐다.


바깥에서 자식들에 둘러싸여 식사를 마친 어머니를 좀 더 보고 가겠다고 형제들은 우리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커피를 내리고 동생이 사 온 딸기를 씻고 집에 있는 귤이며 포도를 냈다. 어머니의 식사량이 적었던 건 아니었는데 어머니는 포만감을 못 느끼시는지 후식으로 나온 과일에 자주 손이 갔다. 하기야 보통 사람도 먹을 거 앞에서 절제하기가 쉽지 않은 법. 하물며 인지능력이 떨어진 어머니로서는 가늠하기가 더욱 어려웠을 터다. 당신 앞에 놓인 과일 그릇에서 포도며 딸기를 입으로 가져가는 걸 그저 형제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자식들에 둘러싸여도 어머니 특유의 눈감은 버릇은 여전해서 눈을 떠서는 과일을 입안으로 집어넣고 감고서는 오물거리며 단물을 빨아드셨다.


어머니 옆에 앉은 셋째 언니가 과일을 챙겨주면서 주무시듯 눈을 감고 있는 어머니에게 눈 좀 떠보라고 재촉하니 정치 얘기며 일상 얘기로 떠들썩했던 형제들이 숨을 죽이고 어머니를 주시했다. 눈을 떴던 어머니는 그 많은 눈들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자 당황스러운 듯 사람들이 어디서 와서 이렇게 자기를 보고 있느냐고 놀라워하셨다. 그뿐이었다. 어머니는 이내 다시 눈을 감아버리셨다. 언니가 다 어머니 자식들이라고 눈 좀 뜨시라고 다시 채근하자 어머니 왈, 눈을 떠서 뭐하냐는 말을 내뱉고 또다시 눈을 감아버리셨다. 그것은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되지도 않은 세상에 대해 어머니 나름 득도(?)하여 얻어낸 결과일 게다. 어쨌든 어머니는 늘상 그렇듯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과일을 드시며 약속이 있는 자식들이 한 명 두 명 자리를 빠져나가는 것도 모르고 자리를 지키셨다.


일은 밤중에 일어났다. 주무시다가 그냥 아래로 쏟아냈나 보았다. 침대 매트리스 위에 깔린 전기장판까지 대변물이 스며들어가 있는 걸 보면 그 양이 짐작되고도 남았다. 잠자리에 눕기 전부터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는데 그때는 그걸 소화되지 않은 음식이 위에서 올라오는 거라고만 여겼다. 그래서 공기청정기를 돌리며 냄새가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참이 지나도 그 냄새는 가실 줄 몰랐다. 일어나 기저귀를 살폈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방수요를 넘어선 오물은 침대 패드며 어머니가 덮은 이불 가장자리, 무엇보다 어머니 아랫도리와 등 뒤 목 부분까지 차고 올라 똥물이 떡이 돼 달라붙어 있었다. 감각이 무딘 어머니는 그런 와중에도 가열된 전기장판의 따뜻한 온기에 세상모르고 주무시고 계셨다.


곤하게 자는 사람을 흔들어 깨웠더니 역정을 내신다. 일은 처리해야하는데 잠결의 어머니는 정신을 못 차리고 일으켜 세워 앉히려하면 자꾸 쓰러지셨다. 무엇보다 오물을 뒤집어쓴 잠옷을 혼자 힘으로 벗겨낼 재간이 없었다. 옷을 벗기더라도 어머니 머리 위로 떨어질 오물을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그런 불상사는 막아야 해서 앉혔던 어머니를 다시 눕혀놓고 부엌에 가서 가위를 들고 왔다. 가져온 가위로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어머니 위아래 잠옷을 싹둑싹둑 잘라냈다. 옷을 벗겨내니 얼마나 쏟아냈는지 일회용 기저귀와 일자형 속기저귀가 똥물에 흥건히 젖어 묵직했다. 전기장판의 열기로 어머니의 등에 묻은 오물은 벌써 말라가고 있는 중이어서 물티슈로 닦아내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안방 가득 진동한 오물 내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센터에 가시지 않은 일요일이면 어머니는 운동량이 부족해 걷는 것이 시원찮다. 더욱이 날이 바뀌기 전날은 식당에 가고 집에 와서는 자식들 앞에서 과일을 잡수느라 통 걷지를 못한 터라 어머니의 다리 떨림은 더욱 심했다. 그런 어머니를 화장실까지 모셔가기가 겁이 났지만 도리가 없었다. 내 두 손을 잡고 발을 끌며 벌벌 떠는 어머니를 화장실까지 모셔갔을 때는 등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주무시다가 느닷없이 알몸이 돼 화장실로 끌려가 아직 찬기가 빠지지도 않은 물로 물세례를 받은 어머니로서도 고달프고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을 터. 억울하기까지 하신지 욕을 섞어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니를 침대에 눕히고 방 구석에 던져놓았던 오물이 묻은 것들을 쓰레기봉투에 담고 이불이며 패드며 하는 세탁물은 애벌빨래를 하여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한밤중에 황망하게 일을 치르고 나니 정신이 얼얼한데 벌써 어머니는 주무시는지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을 청해보려고 잠자리에 누웠으나 코끝에 달라붙은 오물내를 어쩌지 못해 커튼 사이로 유리문이 희끗해 올 때까지 이런저런 잡념으로 머릿속만 복잡했다.(1. 20.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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