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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12

연무의 아침

by 인상파

연무의 아침


잘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어머니를 오늘도 센터에 10시쯤 보냈다. 딱히 몸의 어느 부위가 아픈 것은 아니고 감기 기운 같기도 하는데 평소처럼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오늘도 8시 30분을 넘겨 일어났다. 늦게까지 자는 아들 녀석이 무슨 일이 있는지 새벽에 나가는 소리를 듣고 좀 있다가 알람이 울렸을 것인데 그걸 그냥 누르고 잠들었나 보다. 센터에 어머니가 늦을 거라고 카톡을 보내고도 곧바로 일어나지 않고 발밑에서 몸을 동굴게 말고 자는 맹이를 얼굴로 비벼가며 한참을 웅크리고 있었다.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 하면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일어나 바깥을 내다보니 연무가 시야를 가로막고 있다. 바로 앞동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깡패들이 법원까지 폭력으로 점거하여 깽판을 치는 나라에서 날씨까지 앞을 가리니 앞이 정말 안 보인다는 생각만 짙어진다. 물러설 수도 없어 보인다. 모든 퇴로마저 안개에 잡아먹힌 것 같다. 사필귀정이라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것이 실현되는 걸 목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답답하고 답답할 뿐이다. 살아갈 일이. 돌덩어리 같은 삶의 무게가 짓눌리듯 불안이 엄습한다. 모든 것이 사라진 공간에 혼자 남겨진 느낌. 고독감이 밀려온다.


업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마음의 짐을 벗어내지 못하고 있다. 상처를 받은 것보다 주고 살았다는 이 쓰디쓴 발견. 잘못을 따지는 것은 이미 부질없는 일이다. 누군가를 믿고 기대하는 일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럼에도 매번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며 살고 있다. 매일을 연장하며 살아가는 생명의 끈이기나 하듯. 이제 자신할 수 없는 일들만 넘쳐나고 자신마저 못 믿을 만큼 약아빠진 세상이 되었다. 옳고 그름을 따질 게 아니고 형편을 따지는 세상이 되었다. 멈추게 할 수 없으니 흘러가게 내버려둬야할 것이다. 억지를 쓰지 않을 것이다. 흘러가다보면 바다에 닿을 것이니.


늦었지만 어머니를 깨워 안개 세상으로 내보내려고 없는 찬에 식사를 드시게 한다. 입맛이 없으신지 숟가락이 들어갈 때마다 얼굴이 일그러지신다. 눈을 감고 있는 어머니에게 눈을 뜨고 드시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나라도 눈을 감고 지내고 싶은 날이기 때문이다.( 1월 21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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