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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그 한마디

by 인상파

엄마라는 그 한마디


예전부터 엄마는 불러도 좋고 들어도 좋은 말이라고 생각해 왔다. 함께 사는 엄마가 건강할 때의 엄마가 아니어도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좋은 일이다. 엄마, 라고 불러보면 머언 그리움과 향수를 불러들인다. 엄마는 거동이 불편하여 누군가가 지팡이가 돼주지 않으면 걷지를 못하고 밖으로 나갈 때는 휠체어를 이용하여야만 이동할 수 있다. 정신도 오락가락하여 때로는 당신의 자식들마저 알아보지 못할 때가 있다. 엄마와의 동거가 횟수로 6년이 돼 가고 있고 엄마는 해를 거듭할수록 심신이 쇠약해지고 있지만 그래도 엄마는 엄마여서 엄마, 하고 부른다. 엄마가 있어 든든하고 엄마라고 부를 수 있어 좋다. 엄마는 그렇게 존재 자체만으로도 자식에게 힘이 돼주고 있다.


엄마가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그런 엄마와 동거를 포기하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엄마의 거처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요양원이 형제들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고 두달 가까이 입원했던 엄마를 간병하는 사람으로서 솔직히 나도 엄마를 집으로 모셔가기가 버겁게 느껴졌다. 수술 전과 달리, 거동을 못하시고, 기저귀를 착용하시고, 섬망증 동반 후 급속하게 악화된 인지장애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를 요양원으로 보내는 것을 주저했던 건 연로하신 어르신의 고관절 수술은 예후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들어서다. 수술 후 활동을 하지 않고 누워만 지내게 될 경우 대개는 6개월 이내에 돌아가신다는 말을. 그러지 않아도 치매를 앓은 엄마는 상황을 파악할 능력이 안 되니 오로지 통증만 호소할 뿐 전혀 움직이려고 들지 않으셨다. 의욕도 의지도 없는 엄마는 호전이 없어 한 달이면 가능할 걸 두 달 가까이 병원신세를 지고 있었다. 한 줄기 바람같은 희망이 보였던 건 어머니가 다니셨던 주야간 보호 센터에서 어머니의 퇴원 날짜를 물으며 주간에 어머니를 모셔갈 뜻을 비쳤기 때문이다. 센터의 도움을 받으면 낮 동안은 자유로우니 일단은 엄마를 집으로 모셔보자는 결심을 굳혔다. 누구나 살다가 어려운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내게는 그때가 그 순간이었고 그때 내린 결정을 후회하지 않게 돼 얼마나 감사하는지 모른다.


그렇게 엄마와의 동거가 다시 시작되자 우린 생각보다 서로에게 잘 적응해갔다. 그것은 엄마가 딸이 하자는 대로 하시면서 고집을 피울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기에 가능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엄마는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거의 말씀이 없으셨다. 뭘 물어보면 모른다로 일관하셨고 물어보지 않으면 입술에 자크를 채운 사람처럼 입을 꼭 다물어 버리셨다. 그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악화돼가는 치매라는 병의 특성이기도 했고 엄마의 치매가 조용한 치매여서 딸을 그리 고달프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가 그렇게 세상에 무뎌지고 눈을 감아버린 시간이 늘어갈수록 엄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줄어갔다. 예전 같으면 어떻게든 엄마의 기억을 되살려보려고 떠나온 고향과 자식들 그리고 엄마의 형제들 얘기를 유튜브 다시 보기를 반복적으로 재생하듯 되풀이하였는데 엄마의 무반응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었고 스스로 입만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그도 그만두게 했다. 대신 엄마의 병이 덜 심했을 때 엄마와 함께 나눴던 이야기가 녹음된 핸드폰 녹음 파일을 엄마에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센터에 다녀오면 엄마의 하루 일과는 끝나니 주무시는 일만 남는다. 이른 저녁이라 TV를 보시고 소일하셔도 좋으련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주무시는데 엄마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유일한 것이 당신 목소리가 나오는 그 녹음파일이다. 그걸 틀어드리면 주무시다가도 낯익은 당신의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이며 웃기도 했다가 어떤 년이 저렇게 떠들어대냐고 묻기도 하신다.


녹음파일을 틀어드린 날, 안방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두 여자의 목소리가 멈춘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 엄마가 성님, 어쩌고 하며 잠꼬대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주무시는 엄마를 놀려주려고 숨넘어가는 소리로 엄마, 엄마, 엄마. 불러대며 거실에서 안방 침대 위로 올라가 엄마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양말을 신지 않아 찬기가 느껴지는 발을 전기장판의 열기에 데워진 엄마의 발에 갖다 대니 엄마는 기겁을 하며 어디서 뭘 하느라고 그렇게 몸이 차갑냐고 지청구를 주더니 당신 옆으로 더 가까이 오라고 몸을 모로 세웠다. 그럴 때의 엄마는 영락없이 건강할 때의 모습 그대로이다.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싶어 엄마가 주무실 때면 일부러 그런 장난을 치면서 엄마 곁에 딱 달라붙어 엄마의 온기를 나눈다.


엄마가 처음 우리집에 올라오셨을 때는 바닥에 요를 깔고 엄마와 한 이불 속에서 잤다. 엄마나 나나 둘 다 침대를 쓰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 그러다가 갈수록 엄마는 안 좋은 허리를 잡고 일어서는 걸 힘겨워했다. 그래서 전동 침대를 대여해 엄마는 침대에 주무시게 됐고, 나는 침대 옆의 바닥에 깔린 요에서 자게 되었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서 가끔 바닥에 깔린 이불이 눈에 들어오는지 거기서 누가 자냐고 묻곤 한다. 그러면 나는 아래를 가리키며 내가 자는 덴데 전기장판도 깔리지 않은 차가운 토방이라고 장난을 친다. 물론 엄마는 못 믿겠다는 눈치다. 그래도 당신만 따뜻한 데서 자고 있는 것이 미안한지 당신 자리를 좁히며 침대로 올라와 같이 자자고 나를 부른다. 그러면 나는 아이구 따뜻하다, 따뜻해 하며 기다렸다는 듯 엄마의 품 안으로 기어들어가 엄마가 숨이 막힌다고 그만 좀 하라고 했다가,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숨막히는 소리로 내려가라고 소리를 지를 때에야 어슬렁 어슬렁 일어난다.


어릴 적에도 엄마, 엄마 부르며 엄마 곁을 파고들지 못했는데 다 커서 아니, 이제 엄마와 함께 늙어가는 마당에 어린아이처럼 엄마, 엄마를 부르며 엄마를 꼭 껴안고 누워있자니 가슴이 뭉클해온다. 엄마가 없다면 내 삶의 한 부분이 뻥 뚫릴 것이고 그곳에서 불어오는 시린 바람에 나는 자주 한기를 느낄 것이다. 엄마와 동거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엄마의 보호자로 불리게 되었지만 여전히 엄마는 엄마여서 그 이름과 존재 자체가 주는 온기와 포근함에 둘러싸인다. 병든 엄마를 돌보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엄마는 그런 나를 기르고 있음을 알고 있다.


엄마, 불러도 좋지만 들어도 좋은 그 말을 우리 아이들이 새해에도 정답고 애틋하게 불러주기를 바라본다.(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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