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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15

눈밭을 걸으며

by 인상파

눈밭을 걸으며


회색 허공에서 잘게 찢긴 백지가 너울거리듯 춤을 춘다. 바람길에 따라 떠돌던 그것들은 땅위로 내려앉는 걸 잊은 듯하더니 이내 지상에 사뿐히 내려앉아 켜켜이 쌓여간다. 눈이 내린다. 거실 창밖으로 눈이 내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뽀드득뽀드득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벌써 아파트 놀이터에는 빨간 플라스틱 썰매에 어린 자녀를 태우고 눈 위로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이 눈에 뜨인다. 마음은 벌써 눈밭에 가 있다. 이상하게 볕 좋은 날보다 이런 눈이 내리는 날이면 바깥에 나가서 서성이고 싶어진다. 눈의 정갈한 마음을 들여다보며 그 눈과 눈인사를 하고 마음의 고요를 얻고 싶다.


혼자 나갈까 하다가 설 연휴라 집에서 뒹굴고 있는 아들을 대동하고 싶어 나가자고 했더니 흔쾌히 수락한다. 평소에는 친구며 애인을 만나느라 엄마와의 외출에는 인색하게 굴더니 눈길에 엄마 혼자 내보내기가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녀석과 해안도로 산책로를 걸을 생각이었다. 보디가드를 자처하는 아들 옆에서 일부러 미끄러지며 엄살도 떨어보리라. 녀석에게 장갑이며 마스크를 챙기라고 했더니 자기는 그냥 가도 괜찮다며 운동화를 꿰신고 현관문을 먼저 나선다. 녀석의 장갑을 챙겨서 나도 뒤따랐다.


아파트의 내리막길을 내려가다가 몇 번 미끄러질 뻔했다. 아들 녀석이 바짝 긴장한다. 눈은 발목에 못 미칠 정도로 쌓였다. 이미 플라스틱 썰매가 몇 번이나 오르내렸나 보았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길만 미끄럼을 타도 좋게끔 반들반들 윤이 나 있다. 플라스틱 썰매가 대중화되지 않았을 때 긴 아기 욕조를 가지고 나와 여섯 살 아이를 태웠던 기억이 새롭다. 넘어져 엉덩방아라도 찧으면 며칠 앓을 것이 분명한데도 위험을 감수하고 미끄러운 길을 나서는 것은 왜인가.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눈이 왔다는 이유로 목적 없는 산보를 즐기고 싶다. 단지 설경을 보며 쌓인 눈의 감촉을 느끼고 싶을 뿐이다.


해안도로 산책로에 도착하기도 전에 신발로 물이 들어와 양말이 축축해 왔다. 신발이 젖는 것쯤이야. 설 전날이라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은 길은 그대로 눈밭이다. 그래도 드문드문 발자국은 찍혀 있다. 눈을 그냥 보낼 수 없어 눈을 마중 나온 사람들이리라. 눈밭에 난 길은 두 사람이 들어서기에는 턱 없이 좁았다. 아들은 본격적으로 출발하기 전에 엄마가 눈길에 미끄러질 게 걱정되는지 옆에 딱 달라붙어 손깍지부터 낀다. 장갑을 끼지 않은 아들의 손이 장갑을 낀 엄마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긴다. 아무리 평지라고 해도 미끄러운 눈길을 손을 잡고 걷기에는 위태로워 보인다. 하지만 아들에게 손을 놓고 가자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이런 날이 자주 있을 것도 아니고 위험을 감수한 마당에 다정한 손길을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아들의 이런 호위를 받고는 눈길이 아니라 폭풍우에도 거뜬히 길을 나설 수 있겠다. 아들은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눈밭에 길을 내고 나는 길이 나 있는 눈길을 밟으며 전진했다.


둘이 이 길을 걸으면 늘 빼먹지 않고 소환되는 기억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달리기 시합을 했던 때다. 그때가 녀석이 초등학교 고학년이었을 게다. 엄마가 초등학교 때 청군 백군 대표로 나가는 달리기 선수였다고 했더니 그걸 확인하고 싶었는지 엄마에게 달리기 시합을 제안했다. 엄마 말을 근거 없는 허세로 받아들일까 봐 진짜 실력을 보여주고 싶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때는 지금보다 10년은 젊었으니 그게 가능했다. 처음에는 녀석에게 뒤처졌지만 결국에는 녀석을 앞질렀다. 숨은 꼴딱꼴딱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고 심장은 어찌나 세게 뛰던지 딱 죽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또래 아이들보다 재빨랐던 녀석이 엄마 정도는, 했겠지만 엄마에게 뒤처져서는 얼굴이 얼어버렸다. 고등학교 체력 검사 이후 내가 그렇게 죽기 살기로 뛰어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때 얘기를 꺼내면서 우리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하다. 경쟁심이 강한 아들이 장난식으로 이 눈 위에서 겨뤄보자고 콜을 보낸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는 식으로 핀잔을 주면서도 속으로는 이걸 그냥 받아봐, 코를 납작하게 해줘? 하는 오기가 이는 것도 번뜩, 눈길에서 구급차 부를 일 따위를 만들고 싶지 않아 그만 뒀다. 설경을 보며 녀석과 걷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아들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까지 반에서 키 번호가 1, 2번이었다. 지금도 또래 청년에 비해 큰 키는 아니지만 나는 아들이 내 키를 웃자라고 났을 때에야 녀석의 작은 키에 대한 불안에서 헤어날 수 있었다. 작은 키의 친할아버지 유전자를 닮을까 봐 걱정을 몹시나 했기 때문이다. 다른 부모들처럼 나도 아이의 키에 도움이 될까 해서 태권도나 농구교실을 다니게 하고도 싶었지만 아이는 어딘가에 소속돼 강제로 배우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다니기 싫어하는 걸 강제로 시킬 수는 없고 하여 방과 후나 휴일이면 아이와 함께 아파트 농구장에서 농구를 하고 베드민턴을 치고 밤이면 줄넘기를 가져가 줄을 넘었다. 보람이 있었던지 아들의 키는 내 키를 훌쩍 넘었다. 키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어른스러워져 오늘처럼 엄마를 보호하려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감회가 새롭다.


물이 빠지지 않은 바다에 청둥오리 떼가 물속에 서 있는 것이 보이자 녀석이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우리도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물속의 새를 배경으로 한 컷을 눌렀다. 우리는 새가 추울 걸 걱정하다가 추위보다 먹을 게 먼저인 새들이 물속에서 부리로 뭔가를 잡을 때까지 한참을 서서 지켜보았다. 어떤 새는 먹이를 구하는 것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서 있었다. 기다리는 뭔가가 있기라도 한 듯. 그도 눈오는 세상이 새로워 기대하는 바가 있는 걸까. 전에는 보지 못했는데 방파제 돌담 사이에 키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같은 길을 걷고도 청맹과니처럼 소나무를 눈에 들이지 못했다니. 등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그는 그렇게 바다를 품으며 끌어들이며 서 있었다. 그렇듯 무심하게 살다가 놓치는 게 태반이었을 게다. 좀 더 살뜰하게 살피며 살지 못한 후회가 밀려온다. 내 삶에 피와 살이 되었을 소중하고 귀한 것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보내버린 게.

눈길의 호사를 누리며 생각한다. 오늘처럼 눈 오는 날에 아들과 같이 이 길을 다시 걸을 날이 올까. 내게 허락된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을 거라고 여겨지는 요즘이다. 세월의 길목에서 어느날 나는 싹뚝 잘려나갈 것이다. 그래서 더욱 간절히 염원해 본다. 어차피 던져진 목숨이고, 의도하지 않았던 인생이지만 그래도 사는 날까지는 살아봐야 한다고. 아들이 눈길 같은 미끄러운 세상을 걷게 될 때 엄마를 걱정한 오늘의 그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보기를.(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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