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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21

전등을 갈며

by 인상파

전등을 갈며


바깥 화장실 불이 나갔다. 며칠 전부터 잘 들어오지 않아 천장을 탁탁 두들겨서 겨우 살려냈는데 어젯밤에는 그도 듣지 않았다. 전선 접촉 상태가 불량하여 그러리라 여겼는데 이번에는 전등의 수명이 다 해서 그런 모양이다. 바깥 화장실 전구는 꼭 그렇게 몇 대 맞고 나야 정신을 차려 마지막 불꽃을 태우곤 했다. 그럴 때마다 어릴 적 시골에서 텔레비전이 지지직거리거나 화면이 켜지지 않을 때 텔레비전 몸체를 두들겨 팼던 것이 떠올랐다. 무식한 짓일 수 있지만 임기응변으로 해결하기는 좋은 방법이었다. 다행히 사 놓은 전구가 있어 핸드폰 라이트를 켜놓고 전구를 갈았다. 그나마 화장실 전구는 혼자 갈 수 있어 불편을 덜 느낀다.


그런데 거실은 문제가 다르다. 유리로 만들어진 전등 커버의 무게감이 장난이 아니다. 무슨 이유로 그토록 무거운 전등 커버를 씌웠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미 만들어진 자재를 어떻게든 소진시키려는 목적이 아니고서는 미적으로도 꽝이고 실용감도 없는 그 커버를 굳이 사용했을 리 만무하다. 이사오는 집들이 제일 먼저 뜯어낸 것이 거실 전등인 걸 보면 나만 문제의식을 느낀 건 아닌 모양이다. 거기에 커버의 개폐를 병뚜껑 돌리듯 돌리는 구조가 아니라 네 귀퉁이를 나사로 고정시켜 놔서 그것을 풀었다가 돌리려면 누군가는 떠받치고 있어야 해서 혼자 힘으로는 부쳤다. 사고의 위험성이 있었다.


작년 여름, 거실 전등이 깜박깜박하고 불빛은 흔들렸다. 아들은 밤늦게나 들어오고 딸아이는 본가에 잘 오지 않을 때였다. 누구에게 부탁하기도 어려워 그런대로 참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일이 있어 집에 들어선 딸아이를 붙잡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전등 교체였다. 잘 쳐들지 않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커버 나사를 빼고 전등을 갈아끼웠더니 목은 욱신거리는데 깜박임은 없어지지 않았다. 전등의 수명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것은 안정기의 문제라고 했다. 우선 급해 깜박이는 쪽 전등만 빼내고 커버를 닫았다. 거실이 어두운 감은 있지만 그런대로 지낼 만하여 여직까지 그러고 있다.


한 번은 전등 커버 때문에 크게 화를 당할 뻔한 일이 있었다. 지금 집은 입주 때부터 살기 시작하여 15년이 넘었다. 횟수 차 하자 기간도 다 지나고 근 8년쯤 됐을 때의 한겨울이었다. 한파로 세탁기 사용을 자제하라는 관리실의 방송이 있었다. 갑작스럽게 기온이 급하강해서였을까. 세탁실에서 손빨래를 하고 돌아섰는데 천장에 매달린 유리 전등 커버와 전구에서 불길한 소리가 나더니 이내 와장창 쏟아졌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조금만 늦게 몸을 틀었다면 내 머리 위로 유리 파편이 쏟아져 온 몸에 가시처럼 꽂혔을 걸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내 머릿속으로는 이미 유리 파편에 찢기고 꽂혀 피가 낭자한 얼굴이 그려져버렸다. 너무 아찔하여 한동안 몸이 굳어버렸다.


지금껏 나는 전등 커버를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안전불감증이 남의 일인 줄 알았다. 그런 대로 외출할 때는 가스나 전기 확인은 하고 다니는 편이어서 우리 집은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머리 위의 천장에 매달린 전등 커버가 그렇게 금이 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당연히 안전하게 잘 했겠거니 여겼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세탁실 전등 커버와 똑같은 여섯 곳의 전등 커버를 찬찬히 뜯어보니 모두 금이 가 있었다. 세탁실처럼 언제든 쏟아져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 사용하지 않아 거의 교체하지 않아도 충분한 수명을 갖고 있는 전등이 다 그 모양이었다.


나는 그게 우리집 전등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고 관리실에 전화를 했다. 아파트 전체적으로 세탁실부터 안방 거실, 신발장 맞은 편 수납 공간 등의 전등 커버를 세대에서 안전한지 직접 확인해보라는 방송을 넣어달라고 했다. 관리 직원은 우리 집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아파트 전체로 키워 방송할 수 없다는 답변을 했다. 사람의 생명이 달린 문제인데 방송 넣는 것이 무슨 대단한 문제인양 구는지 한심할 따름이었다. 결국은 방송이 한 번 나오기는 했다. 다음날 관리실에서 서너 사람이 나와서 확인을 해가고 전등을 통째로 교체했다.


층간소음에는 유독 예민하면서 집안의 천장은 잘 쳐다보지 않고 살았던 걸 알게 된다. 전등에 수명이 있는 것은 가끔 천장을 쳐다보라는 뜻이 아닐까. 천장을 쳐다보고 혹시 있을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라고. 전등 갈 때마다 이게 영구적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다가도 천장이 자기 한 번 쳐다봐 달라고 말을 거는 거야 하면서 그 귀찮음을 달래본다. 화장실 전등 하나 갈며 옛 기억들을 떠올리며 상념에 잠긴 하루다.(2023.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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