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자취방
아들의 자취방
작년 이맘때 신촌에 아들의 자취방을 얻었다. 자취방을 얻어주며 서울 나들이를 자주 할 생각이었다. 아들도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엄마가 미리 약속하고 자기 집에 들르기만 하면 손수 음식을 만들어 대접할 거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면서 스파케티 삶는 법이며 미역국을 끓이는 법 등을 배워갔다. 아들의 장황설에 나도 조금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 허언이 되고 말았다. 입주하는 날 택시에 짐을 싣고 갔다가 일 년이 지나 방을 빼는 날 택시에 짐을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났다.
일 년이라는 시간이 참으로 속절없이 지나갔구나! 방을 빼고 나니 아쉬움이 더한다. 무얼 하느라 그리 바빴는지 아들 자취방 한 번 들여다보지 못하고 말았으니, 원 참. 지내고 보니 바쁜 날들이었다. 어머니 입원으로 두 달을 병원에서 간병하느라 꼼짝하지 못하고 퇴원 후에는 일한다고 짬을 못 내고 하여 어영부영 되고 말았다. 방을 빼기 며칠 전에 딸과 함께 자취방 방문을 목적으로 서울 나들이를 구상하지 않은 건 아니었는데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불발되고 말았다. 결국 1년 동안 신촌 근처에도 가보지도 못하고 서울이라고는 딱 한 번 들른 국회의사당이 전부였다.
아들은 신촌에 방을 얻어놓고도 자주 인천 집으로 내려왔다. 들어가는 날부터 집 청소가 엉망이어서 나와 아들이 한나절을 청소했었다. 이사 나가는 사람은 청소비용 8만원을 부담한다고 계약서에 돼 있는데 잔돈까지 치르고 들어간 집 상태는 불량하기 짝이 없었다. 주인의 말을 빌자면 우리가 들어오기 전 입주 학생이 며칠 말미를 달라고 하여 늦게 나가 청소를 못했다는 것이다. 냉장고나 침대 밑에서 돌아다녔을 먼지가 말려 뭉치째 돌아다녔다. 청소 상태만 불량했다면 그나마 눈감고 넘어갔을 것이다. 형광등 안정기가 고장 났는지 전깃불은 정신 나갈 것처럼 깜빡거리고 유리창 버티칼 블라인드는 균형이 맞지 않아 한쪽으로 쏠리고 화장실 수건걸이는 나사가 빠져있었다. 침대까지 옵션이라고 하여 들어갔는데 침대 다리 하나는 이미 부러져 있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사람을 아주 개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선 집이 그 모양이었으니 나나 아들은 김이 샜다. 무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도리가 없었다. 부동산에 이야기했더니 아저씨가 직접 와 보더니 민망해 하고 집에 들른 주인에게 문제가 될 부분을 고쳐달라고 부탁하였다. 아들이 거주할 집의 주인과 얼굴 붉혀 좋을 것도 없고 이미 저질러진 일이니 참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숫기 없는 녀석이 일 년 동안 그래도 정붙이고 살기를 바라며 나는 아들과 묵묵히 채 5평이 안 된 집 구석구석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60대 중반의 주인 내외는 우리의 도움을 받아 형광등이며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보며 수리하였는데 서로 뜻이 맞지 않는지 큰소리를 자꾸 냈다.
집을 얻으러 다닐 때는 확인하지 못했는데 그 집은 곰팡이가 많았다. 그 점은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어 젤 꺼림칙했다. 워낙 공간이 좁아서 그런지 안팎의 온도 차이로 인해 아침이면 창문에서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그 탓인지 집안 곳곳에 곰팡이가 많이 슨다며 아들은 불안해했다. 곰팡이 제거 세제를 몇 통 들여 닦아내도 시일이 지나면 다시 생기고 하여 거기에도 적응이 될 즈음 계절이 몇 번 바뀌고 하여 시간은 허망하게 지나갔다.
이번에 방을 빼려고 짐을 정리하러 갔는데 방이 생각보다 넓다. 떠날 때가 돼 섭섭해서인가. 이사한 첫날은 방에 두 사람이 있기에도 답답했는데 침대가 빠진 자리에 접이식 메트리스를 가져다 놔서 그런지 공간이 제법 넓어 보였다. 혼자 지내다 보면 먹는 게 시원찮을 것 같아 이사한 날로 레토르트 봉지 식품을 꽤 준비해 줬는데 그것들은 그대로 부엌 수납장에서 유통기한을 넘기고 있었다. 냉동실에는 배달해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못해 얼려 놓고 있었다. 아들이 며칠 책이며 가벼운 짐을 인천 집으로 옮겨와서 이불을 빼고 나니 그릇과 그 외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쇼핑백 대여섯 개로 간추려졌다. 버리기 아까운 물건들이 보였지만 아들 물건들이니 취사선택은 아들에게 맡기고 나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절반도 채우지 못한 쓰레기봉투가 여럿 나갔다. 접이식 메트리스에 폐기물 스티커까지 붙이고 나니 주인이 마지막으로 집안을 확인하고 일수로 계산한 월세에 청소비며 각종 세금을 계산하여 받고는 보증금을 돌려줬다.
주인은 수십 개가 넘은 원룸을 가진 건물주다. 모든 정산을 끝내고 헤어질 때쯤이 되자 주인은 대단한 선심이라도 쓰듯 우리에게 어디로 가냐고 묻는다. 집이 인천이어서 집에서 다니기로 했다고 했더니 아들이 기특하단다. 그 말에 아무 대꾸하지 않고 있는데, 월세를 받고는 있지만 사정들이 다들 여의치 않은 것 같아 월세를 받을 때마다 자기도 미안하더라는 말을 덧붙인다. 여자의 말이 몹시 거슬렸지만 그 뻔뻔하고 두꺼운 낯짝을 다시 마주할 일은 없을 터여서 약간 속 좋은 사람의 미소를 띠며 건강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택시를 불러 서울을 빠져나왔다. 홀가분함도 잠시 앞으로도 몇 번은 서울에다 집을 얻어야 할 걸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해졌다.(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