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실수
어머니의 실수
아침에 어머니를 깨우며 이불을 들췄는데 지린내가 진동했다. 어머니가 실수를 했다는 걸 알았다. 이번 달 들어 두 번째다. 어머니는 그것도 모르시고 더 주무시고 싶었는지 당신을 가만 누워있게 하란다. 어머니가 이불속에서 나오시려하지 않을 때마다 쓰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식당 간다는 것이다. 식당 간다는 말은 내가 식당 일을 나간다는 뜻이다. 어머니는 다시 식당에는 왜 가냐고 물으시는데 그러면 나는 일을 해야 자식들 먹여 살릴 것 아니냐고 되묻고 엄청 바쁜 척을 하며 어머니를 다그친다. 그럼, 어머니는 알아들었다는 듯 엉기적엉기적 두말 없이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신다. 아닌 게 아니라 가끔 나는 둘째 언니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아르바이트를 나가고 있다.
어머니가 일어난 자리를 살피니 침대 패드며 이불 가장자리가 축축하다. 어머니 아랫도리는 말할 것 없었다. 어머니는 화장실로 들어가시자마자 변기에 앉으셨다. 아직 볼 일이 있으신 모양이었다. 그런데 작은 것만이 아니라 큰 것까지 보시고 일어나셨다. 마스크를 썼음에도 역한 내가 코를 찔렀다. 역한 내를 맡아가며 머리를 감겨드리며 나의 본업에 충실했다. 외출복으로 갈아입으신 어머니는 시원스럽게 쏟아내고 씻고 해서 그런지 아침을 맛나게 드셨다. 아침상에 앉으신 어머니는 식혜 한 모금으로 입을 축이시고, 가시 바른 굴비며 돼지고기 넣은 김치찌개로 공기밥을 한 그릇 다 비워내셨지만 내 입으로는 밥술이 들어가지 않았다. 여전히 눈에 배설물이 어른거리고 코끝에서는 역한 내가 났기 때문이다. 없는 시절에는 똥은 옆에 두고 먹어도 사람은 두고 못 먹는다는 말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 그 말은 내게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배설물이 안 보이는데도 그 잔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침을 뜨지 못했다. 아직 배가 불러서일까 아니면, 심보가 고약해서일까. 사람은 두고 먹어도 똥은 두고 못 먹는 부류인가 보다.
치매 걸린 아버님을 혼자 간병하셨던 시어머니는 가끔 다 된 저녁이면 전화로 밥이 목구멍으로 안 넘어간다고 하소연하셨다. 그런 날이면 어머니가 아버님의 대변 기저귀를 가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화기 저 너머로 어머니의 힘겨워하시는 숨결이 느껴졌다. 어머니는 아버님이 꼼짝하지 않고 누워만 있어서 기저귀를 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 지독한 냄새 때문에 속이 얼마나 울렁거리고 머리가 빠질 듯한지를 자주 토로하셨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도 똥을 옆에 두고는 못 먹는 쪽에 가까웠던 모양이다. 기저귀를 갈 때마다 어머니의 체력은 바닥을 치고 입맛을 잃어가셨다.
근 10년 가까이 어머님이 아버님을 수발하실 때 내가 아버님 기저귀를 갈아본 적은 없었다. 아버님이 며느리 앞에서는 절대로 일을 보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것이 또 그것대로 불만이었다. 기저귀를 갈아봐야 며느리가 당신의 고초를 알아줄 터인데 그러지를 않으니 말이다. 친정어머니가 소변을 흘리고 대변은 변기에 쌌는데도 이렇게 진저리가 쳐지는데 기저귀를 차게 되면 나도 시어머님처럼 노여움이 많아질지 모른다. 그 많은 자식 중에 하필 내가 떠맡게 됐다는 피해의식도 스멀스멀 올라올 거고 어머니에게 그리 다정하게 굴지 못할 것이다. 멀지 않은 날에 어머니가 기저귀를 차실 날이 올 텐데 그날이 빨라질까 봐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병인이 있는 집은 어쩔 수 없이 불쾌한 냄새가 떠돌기 마련이다. 병인 특유의 지린내와 체취가 옷이며 커튼이며 벽지에 배어 잘 빠져나가지 않는다. 그것은 신발 바닥에 달라붙은 껌처럼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문을 열어 환기를 해도 한계가 있다. 시댁을 갈 때마다 떠도는 고약한 냄새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일찍 자리를 일어나곤 했다. 불쾌한 냄새를 참는데도 한계가 있었고 그것은 아무리 해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특히 겨울이면 추위를 많이 타시는 분들이라 문을 꽉꽉 닫고 계셔서 더 그랬다. 냄새가 몸에 밴 어머님은 바깥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냄새난다며 문을 열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님 집에 가면 역한 냄새 때문에 밥알을 세면서 먹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런 나에게 호통을 치시곤 하셨는데 어머니도 잘 드시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유일하게 잘 드시는 분은 아버님뿐이었다. 이 집에서도 그런 고약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만 모르고 있는지도. 날이 추워 하수구가 역류하고 있으니 세탁기 돌리는 것을 자제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오물이 묻은 옷가지와 침대 패드며 이불을 빨기 힘들게 생겼다. 그것들은 며칠째 세탁실에서 잠을 자다가 날이 풀리면 세탁기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동안 그것들은 이 집안에 솔솔 냄새를 풍길 테지.(2023. 1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