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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이가 신문을 보겠다고

by 인상파

맹이가 신문을 보겠다고


새벽부터 아들 녀석이 안방 화장실에서 씻느라고 부산을 떨었다. 해가 중천에나 떠야 일어나는 아이가 웬일인가. 덩달아 나도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는데 늦었는지 아침을 먹지 않고 집을 나선다. 이른 시간부터 친구들과 놀기로 했다고 하기에 목적지를 물었다. 재수하는 친구와는 강남 갔다가 다시 둘이 신촌에서 자취를 하는 다른 친구와 합류하기로 했단다. 놀더라도 좀 멀티하게 노는 것을 보니 확실히 세대 차이가 난다. 막 길을 나서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시간을 물었더니 밤중에나 돌아올 거라며 늦더라도 걱정을 말란다. 먹고 노는 것만은 아님을 환기시키고 싶었는지 가방에 과제할 노트북도 챙겼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였다. 쏘다닌다고 눈치를 준 것도 아닌데 찔리는 구석이 있는 걸까. 춥더라도 방콕하는 것보다 바깥으로 나도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라 추운 날씨에 옷이나 잘 입고 나가라는 뜻으로 날이 엄청 춥다고 했더니, 저도 추위는 싫다고 털 가디건을 걸치고 양말도 두 겹 껴 신었다는 것을 직접 눈앞에서 확인시켜준다. 아들이 나가고 어머니까지 센터로 가시고 나니 집안이 썰렁하다.


집에 혼자 있을 때는 추워도 난방을 하지 않는다. 난방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그럴 때는 옷을 겹으로 껴입거나 무릎 담요를 뒤집어쓰고 지낸다. 새벽녘에 난방을 켜면 오전에는 그 온기로 견디는데 오늘은 그조차도 감당이 안 되는 걸 보니 날이 매섭기는 매섭나 보다. 다른 날보다 더 껴입고 어깨와 무릎에 담요를 걸치고서 식탁에 앉아 신문을 보았다. 맹이 녀석은 내가 신문을 볼 때마다 방해를 한다. 신문을 쫙 펼치고 있으면 의자을 딛고 식탁 위에 깔린 신문으로 올라와서는 기분 나쁘다는 듯 앞발로 제 배설물 덮는 시늉을 하며 신문을 개무시한다. 저랑 놀아주지 않고 신문과 놀고 있는 엄마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의 하루는 커피 한 잔에 신문 보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으니 녀석이 방해를 해도 꿋꿋하게 밀고 나간다. 신문을 못 보게 하는 녀석을 야단을 치듯 손을 저으며 쫓아보지만 금세 다시 돌아와 얼쩡거린다. 저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고 신문에 코를 박고 있는 엄마의 행동이 궁금한지 이번에는 저도 신문을 보겠다고 꼭 내가 보고 있는 지면에 자리를 잡고서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린다. 뭘 보내고 물었더니 예앵 소릴 내는 걸 보니 뭘 보기는 보나 보다. 방해꾼 때문에 신문 읽는 진도가 안 나가니 종일 신문을 잡고 있을 판이다. 두고보다가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다.


녀석은 신문 펄럭이는 소리를 무서워한다. 방해꾼을 쫓아내기 위해서 녀석이 올라가 있는 신문을 빼서 뱀이 꼬리를 흔들 듯 흔들어댔더니 휘리릭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녀석이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도망을 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돌아와 신문에 진을 치고 앉기에 다시 같은 수법을 썼다. 약효가 없는 걸 보니 벌써 알아버린 모양이다. 이번에는 신문 모서리에 입을 갖다대며 신문을 잘게 잘게 찢는다. 찢어진 신문 조각이 혓바닥에 달라붙었는지 녀석이 그걸 삼키겠다고 용을 쓰며 괴로워한다. 사포 같은 혓바닥에 붙은 신문 조각이 잘 떨어질 리 없다. 꺼억억 소리를 내며 금방 토하려는 행동을 보여 놀라서 신문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녀석의 입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종이를 떼었다. 입속에 들어간 손가락을 조금 물리기는 해도 아플 정도는 아니었다. 영특하게도 저를 죽이려고 한 게 아니고 살리려고 한 걸 알아차린 것이다. 신문과는 놀만큼 논 것일까 아니면, 신문을 못 보게 했던 게 미안한 것일까. 더는 방해하지 않고 창가 요가 매트에 가 식빵을 굽는다.


방해꾼이 없으니 신문 지면이 잘 넘어간다. 하지만 다음 방해꾼이 있다. 앉아 있으면 아무때나 찾아오는 졸음이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고 잠을 설친 나의 머리는 둔탁하다. 맑지 않은 정신이라 비몽사몽 졸음이 쏟아진다. 맹이의 게슴츠레한 눈을 닮아가며 어느 순간 한쪽으로 기운 고개가 신문으로 떨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마치 꿈을 꾸는 있는 걸 자각하는 것처럼 스스로 졸고 있다는 걸 보게 된다. 잠에 져서는 안 된다. 잠을 깨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여야 한다. 일어나 청소라도 해야겠다. 신문을 접고 맹이가 찢은 신문 조각을 줍는다. 물걸레를 들고 안방에서 거실, 부엌, 작은 방 2개를 훔치고 닦는다. 청소는 무릎을 꿇고 엎드리는 일이다. 스스로를 낮춰보는 일이다. 청소를 끝내고 나면 그런 겸허한 마음을 알아보았는지 잠이 물러가고 없다.(2023.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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