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네 반찬을 만들며
딸네 반찬을 만들며
요즘 딸이 집에 오면 뭔가를 챙겨가려고 한다. 전에는 이것저것 챙겨줘도 가져가지 않으려 하더니 달라졌다. 어제 밤늦게 들어선 딸이 오늘 점심 전에 간다고 하여 어머니를 센터에 보내놓고 부지런히 반찬을 만들어댔다. 밤사이 상온에 내놓은 동태포는 적당한 찬기를 품고 해동돼 있었다. 설 전에 동태전을 해서 조금 보냈더니 사위가 맛있게 잘 먹었다고 하여 이번에 또 동태전을 부쳐 보내려고 한 것이다.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 맛있다고 하면 자꾸 그 음식만 하게 된다. 아들이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이 맛있다고 하여 작년에는 국으로 내리 미역국을 끓였다. 같은 음식에 질리는 법이 없는 나는 아들 녀석도 그러는 줄 알고 줄곧 끓여댔는데 어느 순간부터 물렸는지 미역국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그렇게 누군가의 도리질을 치게 한 음식은 한동안 식탁에 오를 기회를 잃는다. 미역국을 한솥 끓여놓으면 다른 반찬 없이 뚝딱 끼니를 해결할 수 있어 편한데 아쉬웠다. 다른 국과 달리 미끄러운 미역에 맑은국이 목넘이를 용이하게 하기도 한다. 그런 미역국을 올 3월 들어서 끓였는데 먹는 양이 줄지 않아 냉장고로 직행했다.
3년 전에 결혼한 딸은 결혼을 일찍 한 편이다. 지금 나이의 딸보다 나는 더 늦게 결혼을 했다. 같이 살던 막내아들을 결혼시켜 따로 살게 된 시부모님은 적적하셨는지 일요일마다 아들네에 들르셨다. 오실 때마다 바리바리 반찬을 하셔서 어깨에 지고 손에 들고 오셨다. 아들 내외를 먹이려는 그 일념으로 무겁고 힘든 줄 모르셨던 것 같았다. 어머니가 가져오신 찬은 점심으로 차린 밥상 위에 올라왔는데 신혼 초라 음식을 할 줄 모른 아내에게서 밥 같은 밥을 구경 못한 남편은 어머니표 김치며 멸치볶음, 콩자반을 맛있다고 연발하여 어머니가 가져오신 메뉴는 매번 그 범위에서 벗어나질 않았다. 자식이 좋아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대가 달라도 어머니들은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음식을 뚝딱하는 편이라 그리 많은 시간을 잡아먹지 않는다. 동태전은 하기도 쉽다. 해동된 동태포를 물에 씻어 체에 받쳐 물기를 뺀다. 넓은 사각 쟁반에 밀가루를 펴고는 그 위에 후추며 소금을 뿌려 간을 하고 볼에 계란 6개를 깨 잘 풀어 간을 한다. 가스렌지 위에 후라이팬 2개를 올려놓고 기름을 두른 다음 열이 가해지면 밀가루를 앞뒤로 묻혀낸 동태포를 계란물에 담가 후라아팬에 올리고 불을 잘 조절해 가며 익혀낸다. 후라이팬 2개를 이용하다 보니 마음은 급하지만 시간은 그만큼 단축된다.
동태전만 보낼 수 없어 돼지 앞다리로 제육볶음을 만들었다. 우선 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설탕으로 코팅을 한 다음 마늘, 간장, 고추장, 굴소스, 매실 원액을 넣고 잘 주물러준 다음 양파와 양배추를 섞어 버무렸다. 그런 사이 오븐에서는 마늘빵이 구워지고 있다. 마요네즈에 마늘과 설탕을 섞어 식빵에 발라 구우면 끝이다. 에어프라이어에서는 꿀고구마가 구워지고 있었다. 마늘빵 냄새와 군고구마 냄새, 동태전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모두 딸네로 갈 음식들이었다. 그 옛날 어머님이 해다주신 반찬으로 며칠을 버텼듯, 딸은 하루 이틀은 끼니 걱정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엄마가 해 준 음식으로 남편을 먹이려는 딸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집에 도착한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맛있게 잘 먹었다고. 다음에는 소불고기를 해달란다. 용돈을 두둑이 챙겨줄 테니. 그 말을 듣고 나는 기억을 열심히 떠올려보았다. 그 옛날 어머니께 용돈을 챙겨드렸는지를. 우리는 형편이 좋은 적이 없어 겨우 먹고 살거나 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살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식이지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자식 위하는 그 마음 하나로 힘들게 반찬을 해 오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몹시나 그리워졌다. 우리 어머니 참으로 대인이셨다.(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