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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Dec 31. 2023

오늘의 운세 19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된다

수필가 피천득의 ‘인연’이 생각나는 운세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작품으로 기억되는데 동경에서 유숙한 집주인 딸 아사꼬와의 인연을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어린 아사꼬와의 이별은 마치 연인들의 이별식처럼 치러져 ‘나’에게 어떤 기대감을 품게 하지 않았을까. 순수한 청년의 가슴에 불을 지르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그 이후의 이별 의식은 점점 형식적으로 되면서 둘 사이에 인연은 끝난 것처럼 그려진다. 그런 점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인연이란 필연이 될 수 없는 사람과의 잠깐의 스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은 세 번의 만남을 다루고 있는데 두 번의 만남은 긍정적으로 인정하나 세 번째의 만남은 아니 만난 것만 못했음을 실토한다. 그것은 ‘나’의 마음속에서 귀엽고 청순한 이미지의 아사꼬가 시든 백합처럼 낡아버린 것을 세 번째 만남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두 번의 만남으로 족할 만남이었다. 서로를 위해서 말이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꼬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인연에 수반되는 게 만남이 아니라 그리움이라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연이 된 사람과는 원거리를 유지하게 되고 그 물리적 거리는 역설적으로 심리적인 거리를 가깝게 만든다. 그리워하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그리움은 속성으로 자라기 때문이다. 때로는 물리적인 거리를 없애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를 추동시키기도 하는데 그것은 만남의 현실화다. 현실은 마음속에 품었던 온갖 환상을 깨뜨리고 마는데 인연의 대명사 아사꼬가 귀여운 스위트피와 청순한 목련에서 시든 백합으로 추락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가슴 속에 그리움으로 묻어둘지언정 굳이 만남을 주선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살면서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어왔다. 그런 사람들 덕에 지금의 내가 여기 있게 됨을 감사드린다. 어떤 사람과는 영영 이별했고, 어떤 사람과는 어느 시기에 끝나버렸고, 어떤 사람과는 안부를 전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래도 그들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있다. 만날 수 없지만 가슴에 묻고 살아가면서 한때 나에게 커다란 힘을 준 사람들이었음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 또한 한때 누군가를 스쳐 지나왔고 앞으로도 스쳐 지나가겠지만 누군가의 마음속에 그리움으로 남았으면 좋겠다.(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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