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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Jan 01. 2024

오늘의 운세 20

재물이 들어오니 명예가 따른다

이틀 동안 식당 알바를 나갔더니 몸살이 났다. 열감이 느껴져 꼼짝할 수가 없어 어머니를 센터에 보내고 딸아이 침대에 드러누웠다. 잠을 깊게 들 수가 없다. 바깥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이 오나 보다. 비도 오나 보다. 눈과 비가 섞여 땅에 내리꽂히나 보다. 침대에서 일어나 바깥을 내다보니 아이들 서넛이 우산을 쓰고 슬러쉬같은 길바닥을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게 보였다. 신발 속으로 얼음물이 들어가는 것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걸 보니 추위를 잊었나 보다. 슬러쉬 같은 길바닥. 하늘에서 음식을 보낸 게 아닐까.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이라는 그림책은 말 그대로 하늘에서 음식이 내리는 이야기다. 아무리 음식 만들기가 귀찮아도 하늘에서 음식이 내리기를 바라지는 않은데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는 하다. 예전에 우리 선조들은 하늘에서 하얀 눈이 쏟아지면 그게 다 하얀 쌀이기를 바랄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끼니 때마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리는 ‘꼭꼭씹어꿀꺽’ 마을에서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비나 눈 대신 음식이 내린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기 때문이다. 날아가던 새가 머리에 똥을 갈기고 달아날 때도 언짢은데 하물며 음식을 머리에 뒤집어써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얼마나 불쾌할 것인가.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인간은 어떻게 될까. 누구나 하늘에서 내리는 음식을 공평하게 먹을 수 있으니 먹는 것으로 다투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의 기상이 일정하지 않듯 음식 날씨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태풍이 몰아치듯 아무 음식이나 쏟아질 수 있고 음식의 상태가 늘 양호한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마을은 음식물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만다. 더 이상 일상을 영유할 수가 없게 된 마을 사람들은 커다란 빵에 땅콩버터 접착제를 이용해 마을을 탈출하기에 이른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바닷가 작은 마을이다. 그곳에서 터를 잡고 살면서 그들은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살아간다. 더 이상 하늘에서는 음식이 내리지 않게 되니 음식을 슈퍼에서 사 먹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탐욕에 관한 이야기로 읽히는 그림책이다. 인간의 탐욕이 하늘에서 음식을 내리게 할 정도가 된 것이다. 그것은 이상 기후에 대한 비유로도 읽힌다. 전세계적으로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우리나라에도 올 한해 예상치 못하게 얼마나 많은 폭우가 쏟아졌는가. 최근 영하 15도까지 떨어지는 기습한파도 그렇다. 한파 전에는 개나리가 계절을 잊고 꽃을 피울 만큼 따뜻했다. 그리고 한파 후 오늘 다시 영상의 날씨가 펼쳐지며 눈과 비가 섞여 내린다. 오락가락한 이상 날씨로 겨울이 겨울답지 않게 되었다. 지구 곳곳에서 가상 변화에 힘겨워하는 생명들의 아우성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인간의 탐욕이 빚은 결과다.

오후가 되자 몸은 열이 올라 얼굴이 벌개졌다. 으슬으슬 한기가 돈다. 마땅한 반찬이 없어 시장을 봐야 하는데 슬러쉬 같은 길을 걷기 싫어 바깥 외출을 포기했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릴 리 만무하니 '재물이 들어오니 명예가 따른다'라는 운세는 당최 맞지 않다.(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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