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구덩이
깊은 구덩이에서 끌려나온 울음이
기차 굉음 같은 소리로 적막을 찢고 나온다
그날 새벽
여자아이는 발버둥을 치다가
흙무더기에 미끄러져 어둠 아래로 떨어졌다
그녀의 남동생은 삽을 들고 있었다
도살장의 돼지 멱 따는 울음이었다
팔려가지 않겠다고 뻗대던 송아지 같았다
산사태로 물길이 막힌 그 구덩이에서
여자아이는 무덤이 되어갔다
그녀의 외할머니는 잿빛 흙처럼 사나워보였다
새벽을 깨운 울음이 잠잠해지자
발가벗은 여자아이가 구덩이에서 올라왔다
그러나
그날의 울음은 내 안에 무덤을 만들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목격한 장면입니다. 구덩이 안에 있던 여자아이, 삽을 들고 있던 남자아이, 그걸 지켜보고 있던 그들의 외할머니. 울타리 뒤에서 몰래 숨죽여 지켜봤던 그날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말해지지 않은 진실이었고 은폐된 폭력이었습니다.
그때 아이는 구덩이에서 나왔지만 제 기억 속에서는 묻힌 채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날의 울음소리, 그때의 두려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나갔던 마을의 정적까지 모두 제 안에 깊은 구덩이를 만들었습니다. 지워지지 않은 그 기억을 오래 품고 살았습니다. 그 기억을 내보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