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상파 Jan 02. 2024

오늘의 운세 21

차츰 자신감이 높아진다

일요일이면 어머니는 식사 시간 외에는 거의 누워 계신다. 그저 눈을 감고 누워만 계시는 것인지 진짜로 주무시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평소 앉아있을 때도 눈을 감고 계시니 말이다. 눈을 감고 계시면 그저 잠자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찌 보면 어머니의 치매는 잠자는 조용한 치매다. 낮에 그렇게 누워계신다고 해서 밤에 잠을 못 주무시는 것도 아니다. 주무시든 깨어계시든 어머니가 계시는 방에는 늘 텔레비전을 켜 둔다. 적적하실 테니 텔레비전이라도 옆에서 떠들어주라고. 

편찮으신 어머니가 이 집에 살러 오셨을 때 가장 큰 불만은 집에 텔레비전이 없다는 거였다. 시골에 계시다가 반강제적으로 도시의 딸네 집으로 옮겨와서는 당신이 평생 살았던 그 시골을 잊지 못하시고 가고 싶어서 안달하셨다. 그런데 그 핑곗거리가 재밌다. 어머니 말씀으로 텔레비전도 없는 집구석에 가둬놓고 시골을 못 가게 한다는 것이다. 마치 텔레비전이 없는 것이 문제인 것처럼, 당신이 물건이나 되듯, 시골에 데려다 놓으라고 성화를 부리셨다. 막 올라오셨을 때 그 문제로 정말 내 머리꼭지가 돌 지경이었다. 할 수 없이 아이들 어릴 적에 없앴던 텔레비전을 부랴부랴 들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시골 타령은 멈추지 않았다. 텔레비전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건강하셨을 때 어머니는 우리 집에 텔레비전이 없는 걸 굉장히 안타까워하셨다. 텔레비전 보는 낙으로 사셨던 어머니가 딸을 이해할 리 만무했다. 이 좋은 세상에 텔레비전도 없이 무슨 낙으로 사느냐고 수화기 너머에서 늘 야단하셨다. 마치 우리 집에 텔레비전 살 돈이 없어서 텔레비전을 두지 않는 줄 아시고 텔레비전을 사 주시겠다고도 하셨다. 그렇게 열렬한 팬이었던 어머니가 지금은 텔레비전이 무엇인지도 모르시는 것 같다. 텔레비전을 켜거나 꺼도 별 반응을 보이시지 않는다. 그 좋아하신 전국노래 자랑에도 어머니는 눈을 감고 계실 뿐이다.

저녁 무렵에 셋째 언니가 어머니를 뵈러 왔다. 언니가 온다고 딸 이름을 댔더니 그게 누구냐고 묻는다. 이름으로는 자식들 얼굴을 떠올리시지 못한다. 정작 언니가 집에 들어서니 당신 딸이 맞는지 이름을 부르며 반가워하신다. 언니가 감과 귤을 사왔다. 언니는 가을과 겨울 내내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과일을 사 들고 온다. 언니 덕에 집에 과일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 가족들 덕을 보며 살아가고 있다. 올 한 해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키웠다. 모두에게 감사한다. (12. 31.)

작가의 이전글 책 제목으로 시쓰기 0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