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죽음을 응시하다

by 인상파

죽음을 응시하다 –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평생을 법대로 바르게 살았다
남들이 인정하는 삶이었다
도덕적으로 성공했고
부정 없이 순응했지만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회중시계의 ‘결과 예견’
성공대로의 삶이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죽음을 기억하라고
끝을 유념하라는 말이었다


왜 하필 지금 시점에서 나인가
죽음은 늘 남의 일 같았다
내가 죽을 줄은 꿈에서도 몰랐다


그래, 설명은 없어!
고통, 죽음… 도대체 이유가 뭐야?
고통은 심장을 집어삼키고
의사들은 병명을 회피하고
가족은 나로부터 멀리 돌아섰다


나조차 나를 속일 수 없었다
그건 병이 아니라 죽음이었다
모든 걸 빼앗아가는 죽음


설명할 수 없어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이해되지 않아도
응시할 수 있는 것


죽음이 내 전부를 무너뜨려
두렵고 고통스러워
성공적이라 믿었던 것들이
와르르 붕괴되었지만
그건 진짜가 아니었어
외면의 벽을 쌓으면서
단 한 번의 진심조차 놓친 거야


죽음은 통로가 아니라 거울
진심 어린 손길을 만나고
두려움과 침묵을 받아들이니
고통은 사라지고 어둠은 흩어졌다


죽음이 내 안에서 저항감을 잃자
풀린 눈동자에 찾아든 건
어둠이 아니라 빛이었다
고통을 들여다보니
죽음을 지나 빛이 있었다


남들의 죽음은 수긍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죽음은 끝까지 외면하는 경향이 있지요. 저 역시 그런 족속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으며 많은 상념이 오갔습니다.

죽음을 수시로 꿈꾸면서도, 나는 아직도 죽음 앞에 이중적인 잣대를 재고 있었던 겁니다. “잘 살았다”는 착각 뒤에 숨어 있었던 진실들, 그 속에서 나는 빛을 본 적 없이 어둠 속에 오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반이 깨달은 것처럼, 죽음은 외부에서 들이닥치는 파괴가 아니라, 스스로 쌓아 올린 삶의 허상이 안에서 무너지는 충돌일지도 모릅니다. 그 무너짐의 끝자락에서야 비로소 진짜 삶을 응시할 수 있다면, 죽음은 사라짐이 아니라 진실을 향한 문일 수 있겠지요.

그러니 이제는 죽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죽음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통해 내 삶을 다시 바라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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