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제발 그냥 놔두시오
그러니 제발 그냥 놔두시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를 읽고
그러다가 죽겠어요!
정말 죽을 것 같은데
죽을 줄도 모른다고 한다
공깃돌만 한 우박이
얼굴이며 어깨에 부딪혀도
나는 멈출 수 없다
그러다가 죽겠다고?
정말 죽을 것 같은데
멈추면 삶이 끝장나는데
멈추면 죽음이 덮치는데
걸어야 숨을 쉴 수 있고
걸어야 먹을 수 있고
걸어야 잠들 수 있는데
그런데 걸음을 멈추라고 한다
멈추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나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죽으라는 말이지
죽어도 된다는 말이지
우박은 지나가면 그만이지만
멈추면 죽을 수 있다는 걸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던졌다
그러다가 죽겠다고?
그러니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내가 그 말을 내뱉고 돌아서는데
“저 사람 완전히 돌았군.”
우박보다 단단하고
얼음보다 차가운 말
“저 사람 완전히 돌았군.”
돌고 도는 회오리바람처럼
한 번 내뱉은 말이
나를 따라 맴돌았다
나는 지팡이를 짚고
온몸을 다해 걸었고
걸을수록
내 발자국은 사라졌고
내 숨소리는 지워졌고
“저 사람 완전히 돌았군.”
그 말은
내 등을 떠밀어 호수로 향하게 했다
저러다 죽겠다고?
돌았다고?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그러니 지워야지
살았다는 걸 지우기 위해
산 흔적마저 없애기 위해
삶에서 퇴장하는 것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
멈추는 법을 알지 못하니
흔적 없이 걸어보고자
호수 속으로 뚜벅뚜벅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기 위해
뚜벅뚜벅 뚜벅뚜벅
나는 아직도 호수 속에서 걷고 있고
그 위에 떠 있는 밀짚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말하지 않는 사람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왜 걸었는지, 왜 멈추지 않았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는 이상한 사람, 피곤한 사람, 돌아버린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가 걸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멈출 수 없었던 숨을 오래 생각했습니다. 그의 말 없는 삶을 받아들이려고, 고통을 설명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기억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를, 제발, 그냥, 놔두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