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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기웃거리다 36

곁이 아니라 바깥

by 인상파

곁이 아니라 바깥


검은 고양이는 침대에 앉아

벽을 바라보고 있는 날이 많았다.

면벽수행 중인가.

나는 지나가는 나그네처럼

곁을 기웃거리다 옆에 앉았다.

게슴츠레 눈을 뜰 뿐

그는 말하지 않고, 기다리고,

멈추고, 응시했다.

벽을 본다기보다

스스로 벽이었다.

‘뭘 봐?’

묻는 건 누구였을까.

정중동의 그림자 너울거리고

내 마음은 젓가락처럼 쭈뼛 세워지더니

슬며시 뒷걸음질쳤다.

칠흑 같은 털빛에 내려앉은 잠 속에서

검은 고양이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사람이 되기를 바랐던 걸까.

사람이 고양이가 되기를 바랐던 걸까.

인간이란 일,

먹이고, 입히고, 치우는 일.

그 모든 것을

수행이라 불러도 괜찮을까.

그는 그 일을 끝내려 했던 걸까.

벽을 지지듯

검은 동공이 깊어지고

수염을 쭈뼛 세우더니

고양이는 야옹— 하고

벽 속으로 사라졌다.

어쩌면 나는 그의 곁이 아니라

그의 바깥에만 머물렀던 것일까.

그가 사라진 자리에

머루빛 털을 가진 그림자 하나

기척 없이 어른거렸다.

벽 너머 어딘가에서

그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고양이는 벽을 보았고

나는 고양이를 보았는데

그렇다면,

벽은 누구를 보고 있었던 걸까.


이미 곁을 떠난 고양이가 그립다. 이름은 뭉크. 근 십 년을 함께 살았다. 조용한 고양이였다. 벽만 바라보며 하루를 보내는 일이 잦았고, 나는 종종 그의 뒷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저리 꼴똘히 하나 궁금했다. 스님 같은 고양이라고 여기며 면벽수행 중이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침대의 벽지를 자주 긁어댔다. 결국 그 벽지는 찢기고 벗겨졌고, 딸아이는 머루빛 색지를 사다가 커다란 뭉크를 오려 붙였다. 뭉크는 떠났지만 그 벽에 붙박인 뭉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걸 볼 때마다 뭉크가 떠오른다. 그리고 또다시 묻게 된다. 그 아이는 벽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무엇을 견뎠던 것일까. 벽 앞에 서면 똑같은 물음을 하게 된다. 뭉크의 그림자처럼, 그 곁이 아니라, 그 바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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