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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기웃거리다 37

세월을 건너는 생

by 인상파

세월을 건너는 생

말없이 떠나는 것이

어찌 세월뿐일까

간다는 말도 없이

슬며시 떠나 돌아오지 않는

그 사람의 일은 어제로 끝났지만

오늘은 마중하는 중이고

내일은 그 길에 나서게 될 것이다

오는 것 막지 못하고

가는 것 붙잡지 못하니

이 순간에도

덧없는 바람이 불고

생을 얻은 순간부터

늙음의 씨앗은

병과 나란히 몸을 점령하고

시치미를 떼고 앉는다

오늘 그대가 가고

내가 떠나게 되는 내일에도

변함없이 오고 가는 일은

그저, 물처럼 흘러갈 뿐이니

서러울 게 없는 눈물방울

흙속에서 고물고물 기어나오니

그건 누구의 생이었던가

이름 없는 마음의 찌꺼기처럼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던 듯

그저,

흙으로 돌아가려는 것

다시 생이 되어 흐르려는 것

하늘은 여전히 아득히 멀고

땅은 여전히 하늘 아래서 버티고

세월은 세월을 좀먹으며

스스로 늙고, 병들고, 죽어

또 다른 생을 낳는다

그렇게 세월은 영생하면서

우리는 그 속에서

죽었다가

살아난다

아무 일도 없던 듯이

가끔, 아주 가끔 급작스레 우울감이 밀려드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살아가는 일들이 무엇 하나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고, 모든 것이 허망하고 공허해집니다. 하고 있는 일도, 해야 할 일도 이름 없는 바람처럼 허공에 흩어지는 듯합니다. 마음은 천천히 가라앉고 어느새 땅바닥에 달라붙어 기어다니듯 하루를 견디게 됩니다. 그럴 때 저는 사는 일에 어떤 목적이나 의도를 품기보다 그저 세월이라는 거대한 자연 앞에 잠시 멈춰 섭니다. 흘러가는 것을 거스르지 말자고, 머무는 것에 집착하지 말자고, 그저 지금 여기에 잠시 놓여 있다는 사실,

그 하나로 됐다고 속삭입니다. 그 견딤을 글로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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