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길의 없는 너
없는 길의 없는 너
길이 없어
너에게로 갈 수 없다
길은 처음부터 없었으니
길 위에 서본 적이 없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처럼
없는 길 위의 너를 향해
물결처럼 부서지는 선을 그리고
그 위에 나침반 없는 배를 띄운다
안개 속에서 이름을 부르면
너는 부서져 물비늘이 된다
없는 길에
없는 길을 닦을 수 없어
없다, 없다 되뇌다 보면
있다고 믿는 순간
너는 햇빛 속 먼지처럼 흩어지고
배는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
너는 없다
없는 널 부르며
없음을 애도하니
애도의 부재가 애도를 낳고
그 위에는 그림자만 쌓인다
조수처럼 사라졌다 돌아오며
물길 끝의 한 줄기 달빛이
조용히 나를 건너
먼 쪽으로 길을 놓는데
그 길 위에서
파도는 달빛을 머금고
달빛은 너의 그림자를 감싸고
그림자는 파도에 흔들린다
나는 숨을 삼키며
없는 길의 없는 너를
끝없이 부른다
무언지 모르게 애타게 그리운 날이 있다. 실체는 알 수 없다. 그리움의 실루엣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마음은 그 얼굴을 알지 못한다. 허공에 매달린 실체 없는 무언가를 두 손으로 더듬으며 그린다. 부재한 게 어째서 이렇게 가슴을 울릴까, 왜 나를 이토록 오래 붙잡을까. 애초부터 부재한 것들을 향해 헛된 항해를 하고 있었나. 부재 속에서도, 아주 미세하게 길이 열릴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