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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Jan 05. 2024

오늘의 운세 24

망설이는 마음을 다 잡는다


오늘도 신촌에서 아들의 자취방을 구하느라 헤맸다. 대학생 커뮤니티 앱 에브리타임에서 나온 방을 보러 서문으로 갔다. 약속 시간보다 빨리 도착하여 집을 일찍 봤는데 우리 다음으로 볼 사람이 서넛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성에 찬 집은 아니었다. 학교까지 거리도 있고 전철역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와야 하는 점이 그랬다. 고민 좀 해 보겠다고 하고 나와서 근처의 부동산에 들렀다. 흔치 않은 베란다가 있는 집이며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들을 보여줬는데 네다섯 평의 고만고만한 크기의 집이었다. 마음에 쏙 드는 집은 아니더라도 마음이라도 가면 좋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장소를 바꿔 연대 정문 근처의 부동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문에 비해 꽤 비싸리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 않았다.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50만 원, 관리비 5만 원 원룸도 있었다. 정말 좁기는 했다. 침대와 부엌과 책상 하나가 들어간 자리를 빼면 사람 하나가 겨우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오래된 집들을 개조해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원룸을 만들어서 채광이 없어 어두컴컴한 집이 많았다. 우리는 보증금을 올리면서 월세가 싼 집을 골랐는데 다행히 그런 집이 있었다. 집이 밝고 따뜻해서 좋았다. 

이번에 아들 녀석 자취방을 구하면서 드는 생각은 집들이 조금 온기를 품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에게 세를 주기 위해 짓고 개조한 건물들이 너무 삭막하고 좁아서 그 속에 들어앉아 있으면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라 돈을 벌어다 줄 집만 계산하다 보니 그렇게 지어진 것이 아닐까.

1943년 칼데콧상을 받은 버지니아 리 버튼의 <작은 집 이야기>는 급속도로 도시화 돼가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으로 집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그림책이다. 집도 사람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 속에 있을 때 정겨움이 느껴지는 법이다. 시골 언덕에서 사계절의 자연 풍광을 즐기며 더 바랄 게 없었던 작은 집은 도시화의 가속화로 소음과 거대 건물에 갇혀 결국은 그 존재마저 알아볼 수 없는 지경에 놓이게 된다. 작은 집을 처음 지은 주인은 금과 은을 줘도 절대로 팔지 않을 만큼 소중하게 여겼지만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도심 한복판에서 쪼그라든 모습으로 전락한 작은 집에서는 더 이상 그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집을 보러 다니면서 원룸에 기거하고 있는 학생들이 꼭 작은 집 신세로 보였다. 그들도 어릴 적에는 작은 집과 다를 바 없이 ‘금을 주면 너를 사랴/ 은을 주면 너를 사랴’ 같은 자장가의 한 대목처럼 더 할 수 없는 귀한 존재였을 텐데 원룸의 그 작은 집에서는 정말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너무 좁고 삭막한 공간에서 그들의 존재가 빛을 발할 수 있을까. 

서울로 아들 자취방을 구하러 다니며 고만고만한 네다섯 평의 원룸을 보다가 집에 돌아오니 우리 집이 대궐 같다. 대궐 같아도 딸이 떠난 방을 둘러보면 가슴이 휑하다. 딸이 있을 때는 그토록 방이 가득 차 보였는데 사람이 없으니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어 보인다. 물리적으로는 넓어졌으나 심리적으로 좁아진 것이다. 딸이 이 집안을 채웠던 공기가 빠져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는 아들 녀석까지 신촌으로 떠나면 그 빈자리는 더 커질 것이다. 그렇게 자식은 떠나가고 부모는 떠난 자리를 지키는 것일 게다.(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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