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새가 되고 싶은 날

새가 되고 싶은 날

by 인상파

새가 되고 싶은 날, 인그리드 샤베르 글, 라울 니에토 구리디 그림, 김현균 옮김, 비룡소


새가 되고 싶은 날


새: 새록새록 좋아진 사람

가: 가슴은 고장난 듯 쿵쾅

되: 되도록 깃털 옷을 입고

고: 고독한 한 마리 새가 돼

싶: 십 리 밖 웃음소리 들으며

은: 은근히 알아주길 기다리며

날: 날을 새고 밤을 샌다.


깃털 옷을 입은 마음


첫사랑.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단어입니다. 이 작품은 그런 ‘첫사랑’의 기억을 조용히 불러냅니다. 나는 언제 첫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보았을까, 책장을 덮으며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보게 됩니다. 아마 초등학교 입학 후였을까요. 선생님이었을까요, 친구였을까요. 성에 눈뜨기 전이라면 초등학교 시절은 건너뛰어야겠지요. 아니, 고학년 때 어렴풋이 야릇한 감정을 품었던 적이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짝사랑이었던 것 같네요. 애수 띤 눈빛의 또래 남학생이었습니다. 중학교 때는 혼자 지낸 날들이 많았고, 그 시절엔 이성에 마음이 끌리는 일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또래 남학생들이 유독 어리게 느껴지기도 했지요. 진짜 사랑의 감정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야 찾아왔습니다. 함께한 시간도 많았고, 그 사람은 제 첫사랑이자 실패한 사랑이었습니다.


이 그림책의 그림은 매우 단촐합니다. 화려하지 않기에 오히려 마음을 오래 붙잡게 되지요. 라울 니에토 구리디는 외롭고 소극적인 소년이 한 소녀를 만나면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을 검정 연필과 무채색의 파스텔로 절제되게 그려냈습니다. 시선을 확 끌지는 않지만, 소년의 간절한 마음이 오히려 그 담백한 선에서 절절히 느껴집니다. 닿지 못하는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닿고 싶어 하는 마음. 참 짠하고도 서러운 장면들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신비롭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마음을 끄는 단 한 사람이 있다는 것. 이름도 모르는 존재들 속에서 그 사람만 빛나는 순간이 있지요. 때론 이유 없이, 때론 아주 작은 취향 하나로. 그 만남이 사랑으로 맺어지기도 합니다.


소년은 소녀가 새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자신이 새가 되기로 마음먹습니다. 깃털 옷을 입고 소녀 곁을 맴돕니다. 하지만 소녀의 관심은 오직 진짜 새에게만 향해 있고, 소년은 철저히 외면당하지요. 그럼에도 소년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좀 봐달라는, 마음을 알아달라는 바람으로 무거운 깃털 옷을 계속 걸칩니다. 그리고 마침내, 소녀는 소년의 진심을 알아채고, 그의 옷을 벗겨주며 꼭 안아줍니다. 이렇듯 한 사람의 마음에 닿기 위한 소박한 몸짓과 느릿한 기다림. 그것이야말로 사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없이 가슴 시린 첫사랑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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