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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by 인상파

빈집, 이상교 글, 한병호 그림, 시공주니어


빈집


빈: 빈자리가 생기니

집: 집으로 새 손님이 찾아들었다.


사람은 떠나고, 자연은 살러온다


이상교 시인의 시 「빈집」에 한병호 화가가 그림을 더했습니다. 시인은 시골길을 걷다 우연히 빈집을 발견했고, 곧 그것이 정작은 ‘비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의 존재는 시인에게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지요. 온갖 식물과 동물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걸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요. 마치 오래전부터 사람이 떠나기만을 바라며 그 자리를 노려온 것처럼 담장을 비집고, 마당을 점령하고, 틈새마다 뿌리를 내립니다. 그러니 ‘빈집’이란 말은 사람의 시선일 뿐이지요. 사람이 떠나면 다른 생명들이 이사 와 살기 시작하니, 그곳은 더 이상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빈 것은 사람이지만, 집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시골에서 혼자 사시던 어머니가 치매로 도시에 있는 제 집으로 오시면서 어머니 집은 비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집은 금세 허물어집니다. 반년 만에 내려가 본 집은 먼지로 덮이고, 곤충들과 들쥐가 드나들고, 창틀은 거미줄로 가득했지요. 마당에는 개망초, 돼지감자, 쑥, 질경이, 명아주 같은 잡초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 살고 있었습니다. 허리께까지 자란 풀들은 김매는 손길이 사라지자 거칠 것 없이 번성했고, 사람의 부재를 틈타 자연이 자기 땅을 되찾은 듯 보였습니다.


그 집은 더 이상 사람의 집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먼지와 벌레와 잡초의 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웠습니다. 사람이 비운 자리에 자연은 망설임 없이 돌아오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삶들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빈집’이라는 말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인간중심적인 말인지요. 그 집은 여전히 누군가의 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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