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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Jan 06. 2024

간병 일기 01

남편의 발작


이게 무슨 신호일까. 간헐적으로 있었던 남편의 발작이 잦아졌다. 

그 일은 추석을 코앞에 두고 일어났다. 6년 전 뇌종양 수술이 있은 후 밤마다 항경련제를 복용해 온 남편은 서울대 병원으로 항경련제를 타러 갔다. 모처럼 서울나들이를 끝내고는 형님 댁에 계신 부모님을 뵙고 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남편이 형님 댁에서 쓰러졌다는 것이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차려준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다가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나오지 않아 들여다봤더니 변기통 옆으로 쓰러져 있더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님을 불러 남편을 거실로 끌어내 손발을 주무르며 찬물을 끼얹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자 깨어난 남편은 제 몸의 심각성을 모르고 집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한 어머니는 애가 타서 며느리에게 버스 정류장까지 나가보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남편이 타고 올 버스를 기다리는 내내 내 몸은 온갖 나쁜 상상으로 질식할 것만 같았다. 버스를 타다가 발작을 하지는 않았을까. 길바닥에 쓰러진 것은 아닐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길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아닐까. 집을 찾아오지 못한다면? 그런 불길한 생각에 시달리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이 버스에서 내리는 것이 보였다. 사지에서 돌아온 사람을 만나기나 한 것처럼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날 발작은 앞으로 다가올 쓰나미 같은 발작의 신호였다. 2년 전에도 간간히 발작이 있어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종양이 보여 항암제를 복용했다. 최근 검사에도 종양이 보인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기 때문에 내 불안은 증폭됐다. 그 발작이 있고 며칠 후 남편은 종종 뱃속에서 화학물질 같은 역겨운 냄새가 올라온다고 했다. 그럴 때 남편의 얼굴은 대리석처럼 파리했고 몸은 서늘하게 느껴졌다. 기운이 없어 앉아있기가 힘에 부치는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안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하지만 남편은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발작이 일어나도 본인은 기억하지 못하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일어난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니 그것은 일어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넘어지면서 생긴 상처나 근육통으로 며칠 끙끙 앓으며 고생을 할 뿐이었다.

지난 주 일요일 저녁에도 발작의 신호가 왔다. 속에서 무슨 이상한 냄새가 확 끼친다고 하더니 이미 얼굴색이 누래보였다. 저녁 식사 중이던 남편의 손에서 숟가락이 떨어졌다. 안방으로 들어가 눕겠다고 해서 따라 들어갔더니 남편의 눈자위가 허옇게 치켜떠졌다. 동시에 몸을 떨면서 아따따 같은 혀짤배기소리를 어눌하게 뱉어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수밖에. 그러더니 혼곤히 잠에 빠져들었다.

자는 남편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부엌으로 나왔다. 아빠의 상태가 이상한 걸 알고 아이들도 숟가락을 놓고 각자 제 방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식탁 위의 밥과 국은 이미 차갑게 식어버렸다. 먹다만 음식 앞에서 머리가 하얘졌다. 이 난국을 앞으로 어떻게 헤쳐 나가야할까. 코끝이 시큰해지면서 뜨거운 눈물이 볼 위로 흘러내렸다. 가족들이 흩어진 식탁에는 적막감만이 감돌았다.(2010년 9월 30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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