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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Jan 07. 2024

간병일기 02

소란한 아침

남편은 새벽 3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요근래 잠자는 시간이 계속 늦어지고 있다.  늦게 자니 기상 시간도 당연히 늦어지고 있다. 거의 점심 무렵이 돼야 일어나서 밥을 뜨는 둥 마는 둥 한다. 밥맛이 있을 리 없다.  잠결에 들어오는 기척이 있어 시간을 물었더니 2시 반이라고 했다. 원고 마감할 일이 있다고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더니 교정을 보고 <기획회의>에 송고까지 한 모양이다. 피로가 잔뜩 묻은 목소리였지만 일을 마친 사람 특유의 뿌듯함이 느껴졌다.

오늘 아침 아들 녀석 기분이 별로였다.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더니 잠이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 날 아침이면 녀석은 꼭 고집을 부린다. 밥을 안 먹고 가만 앉아있거나 유치원 갈 생각이 없는 것처럼 딴짓을 한다. 자기 기분을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순간이 종종 있는데 아들의 오늘 아침이 그랬다. 그럴 때는 괜히 트집을 잡고 싶어진다. 언짢은 기분을 어찌하지 못하고 녀석은 만만한 엄마를 들볶았다. 

아침부터 엄마는 아이와 푸닥거리를 한다. 아이의 고집을 꺾을 생각에 경고를 하고 으름장을 놓지만 결국 아이를 당해내지 못한다. 녀석이 징징거리다가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기침을 해대면 겁을 먹고 한 발 물러서게 된다. 아, 참 못됐다. 처음부터 아이의 마음을 다독일 것을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자고로 자식 이긴 부모 없다고 하지 않던가. 늦은 감은 있지만 토라져 있는 아이를 달랜다. 아이를 어떻게든지 유치원을 보내고 싶다. 그 길만이 아이와 엄마의 하루를 평화롭게 지나가게 할 것이다. 뱃속이 허전하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지 않아 미역국에 밥을 말아주며 먹자고 했더니 먹지 않겠단다.  아이의 마음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 누굴 닮아 저리 고집이 센 것일까. 어린 놈 눈치를 본다. 암만 생각해도 저 고집은 나를 닮았다. 

아이는 많이 속상하다는 표정으로 엄마를 주시한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아이는 선 자리에서 꿈쩍을 안 한다. 엄마가 잘못했다고 말하며 가서 껴안아 줄까. 하지만 엄마도 마음이 덜 풀리기는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서면 엄마를 밀쳐내며 발버둥을 치겠지. 하지만 오래 끌면 서로에게 상처만 남을 것이다. 그러니 적당히 저주자. 

“내일도 오늘처럼 엄마 화 많이 돋우어라.” 

어째 생각과 달리 비꼬는 말투가 나오고 말았다.  

"응 알았어. 내일도 오늘처럼 똑같이 할 거야." 

기가 죽을 아이가 아니다. 

아침부터 어린 자식 놈이랑 이 무슨 짓인가. 한심하다. 인생이 불쌍하다. 울컥 감정이 격해졌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눈을 감고 식탁에 앉아 있었다. 갑자기 바뀐 엄마의 태도에 아이가 자세를 낮춘다.

"엄마 내가 잘못했어요."

울먹이는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그래, 엄마도 아침부터 미안해.” 

유치원 등원 시간이 한참 지났다. 유치원 갈 의향이 있는지 물었더니 유치원에 갈 거란다. 녀석을 자전거에 태워 유치원을 향해 씽씽 달렸다. 엄마와 아들은 방금 전의 소동이 언제 있었냐는 듯 달리는 자전거처럼 생글생글거리며 웃고 떠들었다. 가끔은 어린 자식놈 앞에서 나약한 척을 해야지. 그래야 황소도 잡을 그 고집을 꺾을 수 있을 테니. (2010년 10월 8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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