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운이라도 있어야지!

by 인상파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가람기획)


그런 운이라도 있어야지!


인력거꾼 김첨지는 열흘 가까이 돈 구경을 못했다. 앓아누운 아내와 세 살배기 어린 자식이 있으니, 돈벌이가 끊기면 그 가족은 굶어 죽을 판이었다. 그런데 모처럼 앞집 마나님이 전차길까지 태워달라 한다. 아침부터 찾아온 이 일거리는 그야말로 간만의 행운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자신의 목숨이 오래 붙지 못하리라 예감한 듯, 병을 핑계 삼아 나가지 말라 한다. 단순한 어리광이 아니었다. 임종의 순간만은 남편이 곁에 있어 주기를,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아내에게 김첨지는 여느 때처럼 욕설을 퍼붓는다.


“아따, 젠장맞을 년. 빌어먹을 소리를 다 하네. 맞붙들고 앉았으면 누가 먹여 살릴 줄 알아.”


그도 형편이 된다면 아내의 뜻에 따르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어쩌랴. 이상하게 뒤틀린 김첨지의 언어습관에 아내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은 그의 말에 악의가 없다는 것, 하루 벌이가 절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날 그는 연달아 손님을 태우며 모처럼 큰돈을 번다. 아내가 그토록 원했던 설렁탕을 먹일 수 있는 기회였으나, 그는 또 다른 손님을 태우려 남대문까지 나아간다. ‘그 돈 벌 용기가 병자에 대한 염려를 사르고 말았다.’ 아내 곁을 지킬 마지막 순간을 스스로 잃어버린 것이다. 김첨지는 먼 길을 달린 뒤에도 집으로 곧장 들어가지 못한다. 기적 같은 벌이에 취해 기쁨을 오래 붙들고 싶었고, 두려운 현실을 마주하기보다 선술집에서 술잔에 몸을 맡기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 시간에 아내가 혹여 남편을 기다리며 숨을 이어갔다면, 그것이 마지막 기회였을지 모른다.


결국 설렁탕을 들고 집에 돌아와 본 광경은 참혹했다. 남편을 기다리며 죽음을 맞이했을 아내를 들여다보며 김첨지의 입에서는 그 특유의 욕설이 튀어나온다.


“이년아, 말을 해. 말을! 입이 붙었어. 이 오라질 년!”


그러다가 아내 눈의 흰 창이 검은 창을 덮은 것을 알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제 얼굴을 미친 듯이 죽은 이의 얼굴에 비벼대며 하루 운수가 좋았던 것이 아내의 죽음과 맞바꾼 대가가 아니었는지를 곱씹는다. 마지막까지 지켜본 사람 없이 홀로 떠나야 했던 쓸쓸한 퇴장이 눈물겹고, 그 곁을 지켜주지 못해 애통해하는 처절한 몸부림이 안쓰럽다. 죽은 엄마의 젖을 빠는 어린 자식의 젖 빠는 소리는 기괴하고 서늘하다. 삶과 죽음이 한자리에서 발버둥치는 기이하고 서글픈 풍경이다.


운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가진 것 없는 이에게는 시간조차 기다려주지 않는다. 목숨의 시간은 죽음을 가져오고, 돈의 시간은 불안한 마음을 술로 달래게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시간은 끝내 어긋나고 만다. 어쩌면 운은 인간이 감당하지 못할 불행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라고 던져준 선물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선물에 욕심과 수작을 부리면 정작 소중한 순간을 놓치고 만다.


운명은 언제나 짓궂다. 떠나는 자를 붙잡을 수 없게 만들고, 남는 자의 시선을 딴곳으로 돌리게 만든다. 그리하여 떠나는 자는 쓸쓸히 떠나고, 남는 자는 영원한 후회 속에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죽은 아내의 얼굴을 비벼대는 김첨지의 모습은, 거칠고 조악한 욕설 너머에도 깊은 애정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랑은 서툴고 남루했지만, 마지막 몸부림만큼은 절실하고 진실했다.


삶에 찾아드는 운은 주는 만큼 반드시 되가져가곤 한다. 그럼에도 미욱한 인간은 눈앞의 이익에 흔들리고, 정작 소중한 것을 놓친다. 아마 운이란, 그런 인간의 나약함을 겨냥한 장난짓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우리는 생긴 대로 주어진 운을 누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운이라도 있어야지, 그렇지 않다면 인생은 얼마나 고단하랴!

이전 04화갈림길에 피고 진 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