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싸움 끝에 피어난 사랑

by 인상파

김유정의 〈동백꽃〉(가람기획)


닭싸움 끝에 피어난 사랑


김유정의 〈동백꽃〉을 떠올리면 먼저 구운 봄 감자와 “니네 아버지 고자”라는 모욕적인 대거리, 그리고 닭싸움이 생각난다. 무엇보다 같은 또래임에도 아직 젖내가 나는 남자에게 끈질기다 싶을 만큼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점순이라는 이름 석 자는 오래 남는다.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라 한다면, 점순이의 구애는 그리 미워할 수 없다. 다만 그녀가 남자가 아닌 여자였기에 용인된 적극성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하물며 이제 막 성에 눈뜨는 청춘 남녀에게는 더 그렇다. 연애의 풍속은 시대와 장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여기 무대는 1930년대 강원도 농촌 마을. 성숙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점순이는 마음에 둔 남자가 있었지만, 그 남자는 아직 사랑을 깨닫지 못했고 어머니의 경계심에 눌려 여자를 가까이하지 못했다.


게다가 여자는 마름 집안, 남자는 소작인 집안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좋지 않은 소문이라도 나면 남자네 집안은 땅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 경제적 격차가 이들의 연애를 가로막는 벽이었다. 그러나 점순이는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닭을 이용해 남자의 관심을 끌어내는 기묘한 전략을 펼친다.


사건의 발단은 점순이가 구운 감자를 내밀었을 때 시작된다. 알이 굵은 세 알의 감자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점순이가 남자를 향한 호의를 담아 건넨 은밀한 고백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니나 먹어라”라며 거절한다. 게다가 점순이가 “느 집엔 이거 없지?”라며 던진 말은 남자의 자존심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마음을 거절당한 점순이는 분노와 서운함을 닭에게 쏟는다. 남자의 닭을 붙잡아 두들겨 패며, 대놓고 그가 보는 앞에서 괴롭힌다. 닭은 두 사람의 힘겨루기를 대신하는 존재였다. 점순이네 닭은 덩치가 크고 실팍하여 늘 우세했고, 남자의 닭은 번번이 피 흘리며 쓰러졌다. 남자는 닭에게 고추장을 먹여 억지로 힘을 길러 싸움을 붙여보지만, 결국 닭은 기절하고 만다.


결정적인 사건은 나무하러 갔다가 돌아온 길에서 벌어진다. 점순이가 또다시 두 집 닭을 싸움 붙여놓고 천연덕스럽게 호드기를 불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의 닭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분노가 치민 남자는 끝내 점순이네 수탉을 내리쳐 죽이고 만다. 순간의 승부는 남자의 손에 돌아갔지만, 곧 두려움이 그를 엄습한다. 땅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리고 닭을 죽였다는 죄책감이 그를 울음 짓게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점순이는 능청스럽게 다가와 말한다.


“그럼 너, 이담부터 안 그럴 테냐?”


“요담부터 또 그래 봐라, 내 자꾸 못살게 굴 테니.”


“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무엇을 ‘그러지 말라’는 건지 분명하지 않지만, 남자는 무턱대고 수락한다. 연애란 애초부터 말로 다 정의되지 않는 감정이 아닐까.


결국 닭의 희생 위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시작된다. 노란 동백꽃 속에 파묻힌 둘은 어색하면서도 새로운 관계의 문턱을 넘어선다. 적극적으로 사랑을 밀어붙인 점순이와, 끝내 마음을 빼앗긴 남자의 이야기는 풋풋한 농촌 청춘의 사랑담으로 남는다.


연애는 언제나 의도치 않은 방식으로 찾아온다. 멋진 꽃다발이나 근사한 고백이 아니라, 때로는 구운 감자 한 알, 닭싸움 같은 엉뚱한 사건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혹은 우연한 충돌을 거쳐 서로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닭싸움이 끝나자, 사랑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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