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위에 핀 사랑

by 인상파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문학과 지성사)


죽음 위에 핀 사랑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는 한 인간의 불우한 삶이 폭력으로 파괴되고, 동시에 짧지만 강렬한 사랑의 순간으로 빛나는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삼룡이는 벙어리에다 흉측한 외모로 인해 주인집에서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간다.


주인집 아들은 17살에 불과했지만 3대 독자로 귀하게 자라며 버릇없고 고약한 성격으로 성장했다. 동네 사람들조차 ‘호래자식’, ‘애비 속상하게 할 자식’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인간 말종이었다. 그는 제멋대로 세상을 휘두르며 삼룡이를 늘 폭력의 대상으로 삼았다. 오며 가며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하는 것은 예사였고, 똥을 억지로 먹이거나 자는 사람의 사지를 묶어 불을 지르는 등 장난을 넘어선 가학을 일삼았다. 그러나 ‘장애인이니 맞아도 당연하다’는 시대적 인식 속에서 아무도 이를 말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주인 아들이 장가를 가면서 삼룡이는 뜻밖의 일을 목격하게 된다. 그건 새색시가 남편에게 맞고 욕을 먹는 장면이었다. 그런 일은 자기에게나 벌어지는 일이었지 선녀처럼 고운 새색시에게 가당키나 하는 일인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 순간 색시가 자신을 향해 보내는 동정의 눈빛을 느낀 삼룡이는 생애 처음으로 마음을 알아주는 이를 만났다는 벅찬 감정에 사로잡힌다. 스물세 살 청년의 가슴에 봄빛 같은 사랑이 움트기 시작한 것이다.


색시는 술에 취해 길가에 쓰러진 남편을 업어다 준 삼룡이에게 감사의 뜻으로 ‘부시쌈지’를 손수 지어준다. 그러나 이 사실이 드러나면서 두 사람은 걷잡을 수 없는 고초를 겪는다. 주인은 아내를 피가 맺히도록 두들겨 패고, 삼룡이에게는 흉측한 하인이 제 아내를 건드렸다는 누명을 씌워 반죽음이 되도록 두들겨 팬다. 물푸레로 얼굴이 부어오르고, 채찍과 쇠몽둥이에 짓이겨지고, 끝내 낫까지 겨눠지는 참혹한 폭행이 이어졌다. 하지만 누구도 이를 말리지 않았다.


색시에 대한 그리움과 동정은 삼룡이에게 생명 같은 희열을 주었다. 그는 “자기 목숨이라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는 각오로 색시를 지키려 했다. 저녁 무렵, 다 죽어가는 몸으로 주인집에서 내쫓긴 삼룡이는 ‘믿고 바라던 모든 것이 원수’가 되었음을 깨닫고 모든 것을 불태우기로 결심한다. 그날 밤 방화로 추정되는 불길이 주인집을 집어삼켰고, 삼룡이는 불 속으로 뛰어들어 색시를 구해내지만 자신은 끝내 목숨을 잃는다. 새색시 무릎에 누운 삼룡이의 얼굴에는 처음으로 평화롭고 행복한 웃음이 번져 있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 삼룡이는 제 삶을 이해하는 사람과 함께했기에 행복했으리라. 불길 속에서 색시를 가슴에 안았을 때 그는 ‘처음으로 살아난’ 듯하였다. 처음 맛본 인생의 단맛은 너무 짧게 끝나버렸지만, 인생을 길이로 재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몸을 던져 지켜낼 만한 소중한 이를 가졌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오랫동안 이 작품을 단순히 ‘벙어리가 아씨를 연모하다 불길 속에서 구하고 죽는 이야기’ 정도로만 기억해 왔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보다 더 참혹한, 한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은 시대의 폭력이 있었다. 삼룡이는 고문에 가까운 학대를 당하면서도 끝내 자신의 사랑을 지켜냈다.


주인 아들의 폭행은 살인에 준하는 수준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모두 구경꾼으로 남았다. 벙어리라면 맞아도 된다고 여겼던 그 시대가 과연 지금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방관은 폭력을 더 악랄하게 만들고, 끝내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다. 독자로서 나 또한 오랫동안 그 방관자와 다르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 하나로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던 삼룡이. 그의 서러운 인생이 죽음 앞에서 사랑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이, 그나마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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