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애의 「원고료 이백 원」(다봄)
위태한 꿈을 깨다
내게 갑작스럽게 2천만 원이 생긴다면 뭘 할까. 수중에 넣어 두어서는 안 되고, 누군가에게 덥석 건네줘서도 안 된다. 반드시 써야 한다면 어디에 쓸까. 뭔가를 구입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2천만 원을 털어 무엇인가를 사는 일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할 것 같다. 책은 도서관에서 빌리면 되고, 집에 책을 소장하면 언젠가 읽겠다는 생각에 정작 잘 읽지 않게 되니 사는 것보다 빌리는 걸 선호한다. 옷도 서너 벌이면 충분하니 당장 사고 싶은 마음은 없고, 많이 사 놓으면 벌레가 생기니 잘해야 5킬로 정도 되는 쌀과 몇 가지 식자재를 사는 데 지갑을 열 것 같다. 그리고 남은 돈은 어디에 쓸까. 그건 골치 아픈 문제다. 어쩌면 정말로 돈이 생기고 난 뒤에야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강경애의 「원고료 이백 원」은 이렇게 갑작스레 손에 쥔 큰돈의 쓰임새를 두고 부부가 갈등하는 이야기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짧은 글을 쓰고 받은 원고료로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말하는 이야기일 줄 알았다. 그러나 작품이 다루는 1930년대의 200원은 지금의 2000만 원에 해당하는 큰돈이었고, 그것은 신문에 장편소설을 연재하면서 받은 원고료였다. 그러니 주인공에게 원고료 200원은 단순한 돈일 수 없었다. 자신의 글로 번 돈이었고, 가난한 어린 시절과 결혼 후에도 벗어나지 못한 궁핍한 삶을 보상해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 거금이었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부터 궁핍 속에 살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학기시험을 치를 종이와 붓이 없어 친구의 것을 훔쳤다가 도둑년이라 손가락질을 당했고, 여학교 시절에는 다른 학생들이 다 가진 양산 하나 없어 눈물을 삼켰다. 결혼할 때도 형편이 어려워 반지나 구두 한 켤레 마련하지 못했고, 결혼 후에도 가난은 계속되어 남편 친구 아내의 신발을 얻어 신을 정도였다.
그런 삶을 살아온 아내가 손에 들어온 돈으로 지금껏 가져보지 못한 것들을 누리고 싶어 한 마음은 이해 못 할 바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싶은 갈망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털외투, 목도리, 구두, 금니, 금반지, 금시계를 사고 싶어 했다. 남편에게는 양복 한 벌이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남편은 그런 아내의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돈의 쓰임을 묻는 아내에게 굶주린 이웃과 앓는 동무를 돕자고 말한다.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남편이 섭섭해 아내는 눈물을 흘리고, 남편은 그녀의 욕망을 허영으로 몰아붙인다. 급기야 아내를 ‘모던걸’이라 낙인찍으며 타락한 여자로까지 몰아세운다.
언쟁은 격렬해지고, 아내는 남편의 손찌검을 당한 채 문밖으로 내쫓긴다. 그러나 곧 이혼한 여자가 겪게 될 사회적 수모와 고립을 떠올리며 남편에게 잘못을 시인하고 화해한다. 결국 원고료는 값싼 옷 한 벌씩 해 입고, 쌀과 나무를 사들이며, 나머지는 이웃을 돕는 데 쓰기로 한다.
읽으면서 아내의 욕망에 불편함이 남았다. 자신이 번 돈을 자신을 위해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되지만, 그 용도가 외투와 반지, 시계 같은 사치품에 쏠려 있다는 점에서 ‘의식 있는 작가’라 하기에는 내면이 빈곤해 보였다. 무엇보다 그런 아내의 의식이 남편의 현실적 논리에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원고료 이백 원」은 어느 한쪽의 완전한 승리를 그리지 않는다. 돈을 둘러싼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책임, 여성의 자립과 가부장적 질서가 어떻게 충돌하고 조율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동생 K에게 보내는 편지글이라는 점이 인상 깊다. 아내는 자기 허영과 좌절을 과장되게 고백하며, 동생에게 “나처럼 교환가치에 매몰되지 말라”는 교훈을 전한다. 현실에서는 남편 앞에 굴복했지만, 편지 속에서는 그 경험을 사회적 가르침으로 바꾸어낸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한 부부싸움의 기록이 아니라, 갑작스레 큰돈을 마주했을 때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과 가치관을 드러낸 글로 읽힌다. 「원고료 이백 원」은 결국 우리에게 묻는다. ‘돈은 단순한 도구인가, 아니면 인간의 존엄과 삶의 태도를 비추는 거울인가?’
인간은 누구나 욕망과 허영의 문턱에서 한 번은 비틀거리며 선다. 그러나 그 비틀거림 속에서도 아내가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와 남편에게 용서를 빌 듯, 화해와 반성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주인공처럼 위태한 꿈을 깨고 난 뒤의 눈물 어린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언니의 입장이 되어 K에게 당부하고 싶다.
사랑하는 K여, 돈은 삶의 자리를 잠시 비틀 수 있어도, 그것이 너를 무너뜨리지는 못한다. 교환가치에 현혹되지 말고, 네가 살아갈 삶의 참된 가치를 잊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