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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행세하는 자, 돈으로 망한다

by 인상파

염상섭의 『삼대』(창비)


돈으로 행세하는 자, 돈으로 망한다 – 염상섭의 『삼대』를 읽고


염상섭의 『삼대』는 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작품이다. 한국 근대 소설의 효시로 불리는 이광수의 『무정』(1917)보다 14년 뒤에 나왔다. 나이로 보아도 『무정』은 스물다섯 청년의 작품이고, 『삼대』는 서른다섯 장년의 작품이다. 『무정』을 읽으며 우연의 연발과 작가의 미숙한 세계관이 목구멍에 턱턱 걸렸다면, 『삼대』에서는 그런 부분이 말끔히 해소된다. 조씨 집안을 무대로 재산을 둘러싼 탐욕과 가족 간의 비극이 긴밀하게 전개되어 독자의 시선을 끝까지 사로잡는다. 한국 소설이 ‘근대’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지 10여 년 만에 이룬 성취이자, 작가 개인의 연륜이 빚어낸 결실이다.


작품 속 조상훈은 끼인 세대의 초상을 보여준다. 그는 아버지 조의관의 재산으로 교육자와 종교인, 애국지사의 후견인 행세를 하지만 실상은 집안의 일에도, 사회의 책임에도 뿌리 내리지 못한 인물이다. 제사조차 지내지 않고 기생과 주색에 빠져 타락해 간다.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아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전부를 잃어버린 사람은 일시는 절망하고 방황할지는 몰라도 어떤 길이든지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이지만 잃어버려가는 도중에 있는 자에게는 절망이나 방황이나 단념이나 새로운 진취나 희망이 없는 대신에 불안과 초조와 자탄과 원망 속에서 불붙은 사람 모양으로 쩔쩔맬 따름이다. 절망도 없는 대신에 희망도 없다. 진취적 기력도 없는 대신에 이왕이면 모든 것을 내던지겠다는 용단도 없다. 어떻게 하면 이대로라도 끌어나갈까 하는 초조와 번민과 애걸뿐이나 이러한 불안을 잊어버리자니 주색밖에는 위안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시면 마실수록 쾌락을 얻으면 얻을수록 고통은 더하여질 것이다.”


덕기의 상훈에 대한 진단은 옳았다. 상훈의 타락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마실수록, 쾌락을 얻을수록 고통은 커졌기에 그걸 해소하기 위해 더 큰 쾌락을 넘보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제 사람을 형사로 위장시켜 덕기의 금고를 훔치게 하기에 이른다. 그것도 자식이 경찰서에 잡혀간 사이에.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빼돌린 것은 흔해도 아버지가 아들의 재산을 갈취하는 사건은 흔하지 않다. 그만큼 상훈의 정신은 이미 타락할 대로 타락하였다. 돈으로 흥한 세월을 보내기는 했지만, 돈은 그를 구원하지 못했다. 오히려 돈의 노예가 된 그를 파멸로 몰아넣었다.


이야기는 할아버지는 고인이 되고, 아버지는 영어의 몸이 되고, 덕기는 석방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때마침 위중한 필순의 아버지가 병원에서 세상을 떠나자, 덕기는 장례비용을 부담하며 필순이네를 돕기로 작정한다. 그런데 그 장면은 덕기에게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으로 다가온다.


“덕기는 자기 부친이 경애 부친의 장사를 지내주던 생각을 하며 자기네들도 그와 같은 운명에 지배되는가 하는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덕기는 아버지와 같은 처지에 놓였으나, 처자식을 둔 사람으로서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 서둘러 자신의 감정을 정리한다. 필순에게 병화와 결혼할 것을 제안한 것도 그 때문이다. 두 사람의 결말은 확실하지 않지만, 작품은 분명한 메시지를 남긴다. 돈으로 행세하는 자는 돈으로 망하고,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쓰임을 바로 아는 자만이 새로운 세대를 열 수 있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 다시 읽는 고전은 언제나 새삼스럽다. 젊은 날에는 작가의 이름 앞에 고개를 숙였지만, 이제는 작품 속에 스민 나이를 헤아리게 된다. 『무정』은 아직 덜 자란 청년의 작품이고, 『삼대』는 삶의 무게와 경험이 녹아든 장년의 작품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돈에 얽혀 비극을 맞이하는 장면을 읽으면서, 나 또한 한 세대의 끼인 자로서 어디쯤 서 있는가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돈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도 있지만, 욕망을 부추겨 삶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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