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by 인상파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창비)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여자, 옥희 어머니는 올해 스물네 살입니다. 남편은 딸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세상을 떠났고, 그 딸은 올해 여섯 살이 되었지요.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 나이에 남편 하나 믿고 결혼했지만, 인연은 너무 짧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홀로 아이를 키우며 눈물 흘릴 날이 많았을 것이고, 죽은 남편을 그리며 남편을 닮은 어린 자식 하나 키우는 데 인생을 내던졌을 테지요.


사건은 그런 집 사랑에 남편의 친구이자 큰오빠의 친구인 남자가 하숙을 들면서 시작됩니다. 그는 교사로 부임해 들어왔고 아직 혼자였지요. 스물네 살의 어머니가 젊은 남자와 한집에 살게 되자 감정이 싹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혼자인 몸들로 호감을 가진 두 사람이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시대는 남편이 죽은 여자를 과부라 부르고, 외간 남자와의 관계를 곱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드러내놓고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고, 어린 딸 옥희가 메신저가 되어 둘 사이의 마음을 오갔습니다. 아저씨가 삶은 달걀을 좋아한다거나, 꽃을 갖다 주라고 했다거나 하면 어머니는 밥상에 삶은 달걀을 꼭 올리고, 옥희가 건넨 꽃잎을 성경책에 넣어 말리기도 했지요. 사랑손님은 옥희를 통해 어머니의 외모나 잠자리까지 궁금해했고,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뺨에 입을 맞추는 모습은 오늘날 시선으로는 곤란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애틋한 그리움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내외하며 직접 대면하지 못했기에 둘의 감정은 더욱 애틋해지고 그리움으로 쌓여갔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마음을 함부로 풀어놓을 수 없었습니다. 죽은 남편에게 미안했고, 사회적 편견의 벽이 높았던 탓입니다. 그래서 생전에 거의 타지 않던 풍금을 연주하며 노래하다가 끝내 눈물을 흘리며 옥희를 부둥켜안고 말합니다. “옥희야, 난 너 하나문 그뿐.” 주기도문의 한 구절처럼, 어머니는 ‘시험에 들지 않으려’ 스스로를 속박하는 것이지요.


서로 마음으로만 그리워하다가 마침내 아저씨는 고백의 편지를 보냅니다. 옥희 편에 한 달치 밥값이라며 봉투를 주었는데, 그 안에 사랑 고백이 담겨 있었습니다. 편지를 받은 어머니의 얼굴은 파래졌다가 빨개졌다가, 손은 와들와들 떨리고, 입술은 불에 달군 돌처럼 뜨거워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습니다. 거절과 수락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그날 밤 죽은 남편의 옷을 장롱에서 꺼내 손바닥으로 쓸어보다가 다시 집어넣었지요. 그리고 옥희와 함께 주기도문을 외우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라고.


“옥희는 언제나, 언제나 내 곁을 안 떠나지. 옥희는 언제나 언제나 엄마하구 같이 살지. 옥희는 엄마가 늙어서 꼬부랑 할미가 되어두 그래두 옥희는 엄마하구 같이 살지……응! 옥희는 엄마를 얼만큼 사랑하나?”


어린 딸이 물어야할 것 같은 질문을 어머니가 묻는 장면은 가슴 아프고 처량하게 다가옵니다. 사랑을 떠나보내야 하는 절절한 마음과 공허함이 드러납니다.


결국 어머니는 거절의 답장을 써서 사랑손님의 손수건에 넣어 옥희 편에 보냅니다. 손수건을 받은 아저씨의 얼굴은 파래졌고, 어머니는 밤늦도록 구슬프고 고즈넉한 곡조의 풍금을 탔습니다. 그것은 이별을 고하는 곡조였습니다.


떠나는 아저씨를 위해 마지막까지 삶은 달걀을 챙겨주었고, 기차가 떠나는 순간까지 뒷동산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서는 풍금 뚜껑에 열쇠를 채워 마음을 닫아걸 듯 했습니다. 찬송가 갈피의 마른 꽃잎을 집어내고, 달걀 장수가 와도 더 이상 달걀을 사지 않았습니다. 사랑손님의 흔적을 지우려 했지만, 그 감정은 두고두고 어머니 마음을 흔들었을 것입니다.


어머니 마음의 빗장은 언제쯤 다시 풀릴까요?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 해도, 어머니는 그것을 또다시 ‘시험’으로 여길 것입니다. 풍금의 자물쇠처럼, 마음은 오래도록 잠겨 있을지 모릅니다. 사회적 편견에 갇힌 어머니는 옥희 하나만 바라보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자신의 감정에 조금 더 솔직했다면 인생은 다른 길로 흘러갔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시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곧 새로운 사랑과 기쁨으로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요. 편견과 잘못된 생각이 젊은 어머니의 인생을 불행으로 몰아넣은 것은 아닐까요. 사랑을 떠나보낸 뒤 남은 그녀의 가슴은 얼마나 적막했을까요. 자식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남의 이목을 의식하여 사랑을 포기하는 이는 결국 자기 삶을 잃어버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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