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by 인상파

이상의 「날개」(창비)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이상은 참 어렵다. 아마도 그에게 따라붙는 ‘천재’라는 말이 내게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 탓일 것이다. 둔재가 천재의 속내를 어찌 알겠는가. 그의 시 「오감도」는 여전히 이해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그에 비하면 「날개」는 조금은 따라갈 수 있다. 박제된 사람의 서글픈 현실과 피폐한 내면이 현실을 자각하고, 제 몸에 날개라도 달아 비상하려는 꿈을 꾸는 이야기처럼 읽힌다.


스스로를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그는 왜 ‘박제’인지, 왜 ‘천재’인지, 아니면 둘을 아우르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스스로는 ‘유쾌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유쾌함이란 세상과 교섭을 끊고 골방에 틀어박혀, 오직 아내의 방에서 놀고 먹고 자며 공상하는 데서 오는 것일 뿐이다.


“그냥 그날그날을 그저 까닭없이 펀둥펀둥 게으르고만 있으면 만사는 그만이었던 것이다.”


그는 경제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다. “될 수만 있으면 이 무의미한 인간의 탈을 벗어버리고 싶”기 때문이고,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의 행위는 유용을 얻으나 무용에 귀착되고, 생활은 그에게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축축한 이불 속에서 참 여러 가지 발명도 하였고 논문도 많이 썼다. 시도 많이 지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가 잠이 드는 것과 동시에 내 방에 담겨서 철철 넘치는 그 흐늑흐늑한 공기에 다 비누처럼 풀어져서 온데간데가 없고…”


그에게 남는 것은 ‘한 벌 신경’일 뿐, 생활이 없는 삶이었다. 무기력과 나태에서 비롯된 ‘유쾌함’은 비정상적인 부부 관계마저 유쾌하게 여길 힘이 되어버린다. 아내는 몸을 팔아 살아가고, 그는 그 돈에 기생한다. 장지문을 사이로 아내가 손님을 들일 때, 그는 다른 쪽에서 대화와 몸짓을 엿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아내의 벌이로 살아가는 처지가, 오히려 그에게는 ‘연애까지 유쾌’하다고 느껴지는 역설적 상황이 된다.


그는 아내에게 감금당한 듯 지낸다. 끼니를 주어도 그것은 ‘밥’이 아니라 “강아지처럼 말없이 주는 모이를 넙죽넙죽 받아먹”는 것뿐이다. 냉회처럼 싸늘히 식은 모이는 그의 생을 지탱할 리 없다.


“나는 안색이 여지없이 창백해가면서 말라 들어갔다. 나날이 눈에 보이듯이 기운이 줄어들었다. 영양부족으로 하여 몸뚱이 곳곳이 뼈가 불쑥불쑥 내어밀었다.”


그럼에도 그는 아내가 주는 모든 것을 달게 받아먹고, 아내가 외출하면 아내의 방에서 놀다가 돌아오면 자신의 방 이불 속으로 숨어든다. 그런데 우연히 아내가 건네는 돈에서, 그는 묘한 쾌감을 발견한다. 돈이 불러오는 감각, 돈이 몸과 공간을 살 수 있는 힘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이다. 외출을 감행했지만 돈을 쓰지 못하고 돌아와 그대로 아내에게 건네자, 아내는 처음으로 자신의 방에서 그를 재워준다. 돈의 힘이 낯설고도 강렬하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외출은 그에게 자유를 주지 못하고 돈을 쓰는 기능마저 상실한 상태였다. 아내 곁에는 새로운 남자가 나타난 기미가 보인다. 그는 비를 맞으며 일찍 귀가하다가 아내가 손님과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이후로 병을 앓듯 나날을 잠으로만 흘려보낸다.


어느 날 아내의 방에서 발견한 아달린은 그를 충격에 빠뜨린다. 혹시 아내가 자신을 죽이려 한 것은 아닐까? 오해와 불안 속에서 그는 약을 삼키고 숲을 헤매다 혼곤한 잠에 빠진다. 하지만 돌아와 본 현실은 더 가혹했다. 아내는 다른 사내와 함께 있었고, 남편을 향해 육탄으로 덮쳐 물어뜯는다.


“매무새를 풀어헤친 아내가 불쑥 내밀면서 내 멱살을 잡는 것이다. 나는 그만 어지러워서 게가 그냥 나둥그러졌다. 그랬더니 아내는 넘어진 내 위에 덮치면서 내 살을 함부로 물어뜯는 것이다. …… 아내는 너 밤새워가면서 도적질하러 다니느냐, 계집질하러 다니느냐고 발악이다.”


지금껏 남편의 입을 통해 남편의 골방 생활과 외출, 아내가 손님을 맞이하는 일이 전개돼 아내가 전면에 등장하는 일은 없었다. 이 장면에 이르러서야 독자는 가장 현실적이고 우악스런 아내를 목격하게 된다. 박제된 생활이 그를 골방에서 나뒹굴게 했다면 아내의 육성과 육탄전은 그를 집 밖으로 내모는 계기가 된다. 이번에야말로 외출이 아니라 ‘가출’을 해야 함을 직시한 것일까. 언제까지 아내의 그늘에서 기생하며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무작정 뛰쳐나온 그. 스물여섯 해를 돌아보아도 아무 소득 없는 인생, 자신을 인식하기조차 어려운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이때 뚜우 하고 싸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혼돈의 거리에서 그는 순간적으로 비상의 열망을 품는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에서 날개가 돋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는 “날자”는 것도 아니고, 다만 날아보자고 외쳐보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실제 외칠 용기조차 사라진 것 같았다.


결국 그들 부부 관계는 함께 자지도, 먹지도, 대화도 없는 절름발이 관계일 뿐이었다. 남편의 외박, 아내의 아달린, 오해와 불신이 뒤엉킨 그들의 삶은 파국을 향해 달린다. 스스로를 박제된 천재라 불렀던 그는, 자신이 부른 천재라는 이름은 허상일 뿐, 그를 기다린 것은 박제된 삶의 천치 같은 운명이었다. 박제된 날개로는 날 수 없고, 박제된 삶에서는 오해조차 해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삶의 진실일지 모른다.


살다 보면 오해가 생긴다. 그 오해를 다 풀 수는 없다. 그렇다고 사실을 다 해명할 수도 없다. 결국 우리는,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전 10화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